원래부터 없었던 강자의 위용
일본이 대한민국에 대한 무역보복에 나섰다. 한국과 통상교역을 사실상 전면 중단하겠다는 뜻이면서, 한국의 거듭된 반성을 촉구했다. 위안부 합의를 뒤집은 것을 시작으로 반일 자세를 뒤로 하고 건설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자는 것이 일본의 의도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일본은 강자로서의 관용따위는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며, 그 관용을 상대를 봐가면서 베푸는 척을 한다는 것이 명약관화하게 드러났다.
보복은 누군가가 잘 못 했을 때, 피해를 입은 자가 나서는 행동이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에 크게 타격을 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보복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무역을 단절시켰다. 국제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무역이 시행된지 오래 지났지만, 이와 같은 다소 어이 없는 결정은 실로 처음이다. 한일간 무역은 산업 구조가 비슷해 오히려 한국이 기술에서 열위에 있는 부분이 많으며, 한국발 완제품 수출 중 부속품의 핵심기술은 일본에서 나온 것이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에 나선 것이다.
즉, 강자가 그냥 약자 한 번 제대로 혼내주고 싶다고 단행한 것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은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3위에 올라 있다. 이를 인당으로 계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PC)에서는 무려 2위에 올라 있으며, 1인당 GDP에서 통계 지표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일본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한국이 바짝 추격한 상태). 적어도 아시아에서 나름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들도 일본과 견주기에는 한 없이 부족할 정도로 일본이 지니고 있는 경제력은 상당하다. 이에 서구 사회에서 일본을 아시아에 속한 국가가 아니라고 바라보는 관점도 있으며, 그만큼 일본을 존중하고 있다.
의도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첫째, 반한 감정을 통해 아베 신조 총리의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꾸준히 북핵 위협이라는 아베에게 아름다운 외부 변수로 인해 정권 창출의 계기로 삼았다. 북한에서 단행하는 폭죽놀이를 통해 정작 한일 관계는 경색될 수밖에 없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압박에 힘입어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곧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사건이었다. 즉, 일본은 미국을 매개로 군사정보공유에 나설 수 있으면서 한국을 휘하에 둘 수 있는 1차적 여건을 마련했다. 2000년대 중반에 총리가 됐다가 실각한 이후, 2010년대 들어 꾸준히 일본 정부의 수장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2020년대에도 총리로 재직하길 바라고 있으며, '강한 일본'을 만들고자 열을 올리고 있다.
둘째, 헌법개정에 대한 의지다. 개헌을 통해 전범 국가에서 탈피해 군대를 보유하겠다는 의도다. 일본은 2차 대전을 일으킨 국가이자 패전국으로 국제규범에 의거해 군사를 보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제공된 아래 경제성장에 몰두할 수 있었고,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세계 2위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플라자합의가 있기 전까지 미국을 추월한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에 실패했고 냉전 붕괴 이후 미국이 일본 관리에 나서면서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적자 + 무역 적자)가 지속되면서 거품 경제가 붕괴됐다. 이에 일본은 외부 변수를 활용해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 보유를 강력 추진하고 있으며,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국이 동북아에서 자리를 비울 시를 대비하겠다는 의도로 군사 보유를 바라고 있다.
한국의 현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다. 최근에는 대법원에서 강제징용을 당한 이들에게 배상이 필요하다는 판결까지 나왔다. 일본은 판결이 나온 이후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언제까지 과거사를 통해 현재를 가리려 한다는 식의 논리다. 이 때부터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게 인권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배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 경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의 경제 마찰은 한국에게도 큰 부담이다. 일본도 무역에서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보다 탄탄한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참에 한일관계의 주도권을 설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역보복(?)을 택했다.
그럼에도 이를 감행하는 이면에는 앞서 언급한 정치적 노림수가 철저하게 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과는 제재와 보복은 커녕 아무 소리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이 전형적인 강자라기 보다는 한국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북 평화 국면이 어느 정도 윤곽에 드러서는 것으로 일본은 짐작하는 것으로 보이며(평화가 온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반도 견제책으로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과는 관계가 원만하지 않지만, 엄청난 군사력과 대자본을 보유하고 있어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의도는 명확하다. 일단 지난 1963년에 맺은 한일협약을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2015년에 반강제적으로 체결된 합의에는 언제는 양 당사국이 협정을 물릴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부임 이후 곧바로 불합리한 타결이라며 협정을 취소했다. 이후 아베 총리와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수용된 부분이다. 이후 일본은 일 주도로 한국에 무역 제재를 가하고자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이며,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뜻을 아주 강하게 보였다.
맨체스터 대학교의 스즈키 쇼고 박사는 연중 게재한 논문에서 일본이 한국을 두려워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히려 '한국발 위협(Korea Threat)'이라 말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정확히는 수정주의자 및 극우)이 왜 한국을 위협으로 인지하고 있는 지를 전달했다. 논리적으로 중국은 반인권적인 부분에 걸쳐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이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성공했으며, 많은 동조를 얻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한국을 잠재적인 위협국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북한과 달리 한국은 민주국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어 일본의 수정주의자들과 극우집단이 한국에 대한 경계를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훨씬 더 큰 힘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에 베풀기 보다는 윽박지르려 들고 있다. 결국 일본의 속성과 속셈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무뢰배가 저지르는 것과 흡사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마치 누군가의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일본 우익에서는 한국을 복지병에 걸린 누군가로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또, 지나치게 과거에 골몰된 사고를 하고 있다고 볼 가능성이 실로 높다. 그러나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일본의 우익과 같은 사고를 하고 있다면, 한국인이 아니거나, 조상이 친일부역배이거나, 일본인인데 한국인의 탈을 썼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시국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꼭 피아를 확실하게 식별하고 적을 무찔러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 국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상황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마냥 일본과의 관계를 얼려 버린 지금 정부의 탓으로 하기에는 그 이유와 근거가 지나치게 옹졸하지 않은지 되묻고 싶다. 명실공이 참보수라면 우리의 가치를 높이 보고 급진적인 변화를 두려워 해야 한다(아, 이제 이해했다. 일제시대에서 갑자기 광복이 이뤄졌으니 변화를 원치 않았고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봐야 하나 보다.). 하지만 어느 나라의 보수는 좀 지나칠 정도로 수십년 전 우리집에 들어와 가진 재산을 다 털어가고, 강제로 일을 시키고 임금도 주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인권을 유린하다 못해 짓밟은 저 이웃집의 편만 드는지 모르겠다.
꼭, 북한을 볼 때는 과거를 거론하면서 일본을 볼 때는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감정적이고 편향된 시각이 아닌가. 다양한 시각은 그 대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맹목적이고 원색적인 논리로만 대응한다면, 그리고 우리를 무참히도 짓밟았던 누군가를 시간이 지나서 용서하고자 한다면, 일 정부가 지금 벌이고 있는 행태를 더욱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나라는 어느 누군가가 반드시 되찾고자 했던 곳이며, 어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일제 지배를 단순 트라우마로 규정지을 수 없으며, 맞았던 사람이 내가 용서조차 되지 않는데 굳이 때린 이에게 호혜를 베풀어 용서해주자고 하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2019. 7. 1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