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두된 영국의 분리 가능성

포용적이지 못한 지역 이기주의의 결과

by Jason Lee
캡처.PNG 연합왕국의 분단?

영국은 2019년 1월 31일(이하 한국시간) 브렉시트를 공식 확정했다. 국민투표로 인해 탈퇴가 결정된 지난 2016년 6월 24일 이후 만 3년 만에 탈퇴가 결정된 것이다. 원래는 탈퇴가 정해진 이후 2년 동안 협상을 통해 완연한 이탈이 완성되어야 하지만, 영국의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유럽연합과 영국이 협상을 제대로 나선 적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이에 테레사 메이 전 총리가 재직 당시 유럽연합과 선합의 후 내부조율을 위한 세부적인 사안 조율에 나섰고, 이에 따라 체커스플랜(북아일랜드 임시 잔류 조치)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당연히 야당(노동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부임했고, 여당인 보수당은 2019년 말에 열린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고전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과반을 2/3에 달하는 의석을 점유하면서 정국을 유연하게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영국 민심은 브렉시트를 속히 마무리하고 영국 독자적으로 살길을 모색하라는 뜻을 비친 셈이다. 이에 존슨 내각은 곧바로 유럽연합과 협상 착수에 나섰으며, 내부적인 구체적인 합의는 사실상 완연한 탈퇴로 결정되는 수순이었다.


메이 정부는 관세동맹 잔류와 북아일랜드를 중간지대로 설정하는 등 유연한 탈퇴(Soft Brexit)를 추진했으나(부임 당시는 강경한 탈퇴를 말해 놓고 정치적 여건상 의도를 뒤집었으니 여당에서도 존중 받기 쉽지 않았다), 존슨 총리는 완연한 브렉시트(Hard Brexit)를 넘어 전면적인 탈퇴(No-Deal Brexit)를 통해 유럽연합이라는 배에서 아예 확실하게 하선할 뜻을 밝혔다. 이에 영국내 강경한 보수주의자들과 극우주의자들은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의회를 통과하고 탈퇴가 공언된 날을 두고 '독립기념일'이라고 못박는 등 독립국으로서 종주권을 확실하게 획득한 것에 대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예외였다. 일전에도 다른 주제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EU 탈퇴에 상당히 미온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연합왕국을 꾸리고 있는 4개국이 양 진영으로 나뉜 셈이 됐다. 작게는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브렉시트 찬성,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브렉시트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좀 더 세부적으로는 영국의 수도인 런던과 이베리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영국령 해외영토인 지브롤터는 브렉시트에 아주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런던은 동시에 잉글랜드의 수도인 만큼 당연히 잉글랜드 표심으로 분류됐고, 지브롤터도 잉글랜드와 합계해 표가 계산됐다. 런던은 인구가 많았음에도 런던 외의 지역에서 브렉시트 찬성표가 유달리 많았던 만큼 대세를 거스르지 못했고, 지브롤터에서도 절대 다수가 브렉시트를 반대했으나 인구가 미약한 탓에 영향을 주기에는 모자랐다.


1.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문제

북아일랜드는 지역색에 따라 탈퇴를 희망한 곳도 다수 있었지만, 스코틀랜드는 60% 이상이 잔류를 바랐다. 아무래도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다 어업에 대한 비중 또한 높아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원받는 여러 정강정책의 수혜를 입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잔류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많은 이들이 탈퇴를 희망한 탓에 스코틀랜드의 의도는 관철되지 않았다. 즉, 스코틀랜드는 영국 정부로부터 공공기관을 유지해 경제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유럽연합으로부터 공동농업정책과 공동어업정책의 지원을 받아 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지역인데다 다수의 도서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스코틀랜드에게 어업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스코틀랜드는 가장 큰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스코틀랜드는 2014년에 영국에서 독립 여부를 두고 주민투표를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왕립은행을 필두로 스코틀랜드에 상주하고 있는 공공기관을,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결정한다면 옮길 뜻을 드러냈다. 스코틀랜드를 다독이면서도 영국의 일원이길 거듭 바란다고 알리면서도 독립이 단행된다면 잉글랜드발 제재와 영국의 공공기관을 모두 잉글랜드로 이동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캐머런 전 총리는 영국의 하선을 막지 못했지만, 영국의 분열은 막아내면서 현재의 영국 유지에 성공했다. 그러나 2년 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면서 스코틀랜드의 민심은 크게 요동쳤다. 당연히 내부에서 독립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강하게 거론됐으며, 스코틀랜드의 니콜라 스터전 자치수반도 의견수렴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독립 여부를 두고 다시 주민투표를 단행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많았다. 자칫, 독립이 실패할 시 잉글랜드와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당연하며, 독립하더라도 당장 유럽연합 가입을 답보할 수 없다. 유럽연합 가입은 웬만한 기존 국가들도 가입하기 쉽지 않다. 경제사회적으로 책정된 깐깐한 기준들을 모두 충족해야 들어갈 수 있으며, 기존 회원국들의 강한 동의가 필요하다. 영국이 독립한 이상 스코틀랜드의 가입을 위해 영국(잉글랜드)이 막을 여지는 없어졌기에 확률이 낮니는 않지만, 영국에서 빠져 나온다면 경제손실이 불가피하고 이는 자칫 유럽연합 가입조건을 맞추는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확실하기 어려운 만큼, 스터전 자치수반도 선뜻 결정에 나서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로 표결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


그 사이, 가장 큰 변수가 생겼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다. 전유럽에 코로나 전염이 도드라지면서 영국도 확진을 피하지 못했다. 이탈리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신음하는 사이 영국은 대책 마련에 실패했으며, 이미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영국 내 사회적 불확실성이 보다 더 본격적으로 대두됐으며, 스코틀랜드도 영국에 잔존하고 있는 문제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아졌다. 오히려 대내적으로 코로나 방역 및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궁극적으로 영국과 함께 해야 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사안을 확실하게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현재까지 영국에 30만 명 이상이 확진된 가운데 스코틀랜드에서는 18,55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스코틀랜드가 인구가 적은 곳이라고 하지만 상당히 방역을 잘 해냈다. 이로 인해 더 큰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했다. 대신 현 영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으며, 스코틀랜드의 민심도 영국을 일정 부분 떠난 것으로 보인다.


2. 북아일랜드 분리 & 아일랜드 통일 문제

북아일랜드도 선택과 마주하게 됐다. 북아일랜드의 상황을 보면 영국과 인접한 얼스터 지역(동부)에서는 영국의 탈퇴를 바라는 표가 많았으며, 반대로 아일랜드와 마주한 지역(서부)에서는 영국의 잔류를 희망했다. 이는 아일랜드와 인접한 지역의 경우 아일랜드로 출퇴근하는 이가 많아서다. 북아일랜드 자체적으로 경제적인 힘이 미약한 만큼, 아일랜드에 의존하는 비율이 당연히 높다.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인데다 이전처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과 아일랜드는 공동여행구역을 설정해 여권까지 공유하게끔 되어 있어 그간 이동이 자유로웠다. 양국 모두 유럽연합의 국경개방조약(이른바 쉥겐협정)에 합류하지 않았지만, 둘의 이동은 자유롭게 다루기로 한 결과였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단행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아일랜드(영국)와 아일랜드 사이에 이전처럼 국경이 설정되게 된다. 당장 출퇴근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문제는 고사하고 통상 분야에서 있어서 관세 설정이 애매하게 된다. 영국은 유럽연합의 통화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는 들어가 있다. 이에 아일랜드와 일상적인 상품 매매(일반인들이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등)를 포함한 무역에 있어서 차질이 생기게 됐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섬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영국에 자리하고 있어 당연히 영국법이 적용된다. 즉, 당장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경계는 이전처럼 유연한 국경(Soft Border)이 아닌 완전한 국경(Hard Border)으로 정해지고 당연히 물건 구입 시 관세가 부과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진다. 경제통상적인 부분이 상당히 복잡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서두에 언급했따시피 메이 행정부는 이를 위해 임시 방편을 제시했다. 북아일랜드의 지역 불안정성을 최대한 낮춰야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로 통합되는 위협요소를 줄일 수 있어서다. 이에 북아일랜드를 관세동맹에 두게 하는, 사실상 유럽연합 잔류를 내걸었다. 그러나 영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영국이 탈퇴를 결정한 마당에 특정 지역만 남겨둘 경우 향후 야기될 수 있는 외교적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이 탈퇴 이후 유럽연합과 향후 자유무역협상에 나서는 것을 필두로 추후 다자 체제에 발목이 잡힐 여지를 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도 하다. 결국, 메이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북아일랜드의 잔류 문제는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일단락됐다.


앞서 거론했다시피 지역 문제가 더욱 붉어지면, 확률이 높진 않지만 북아일랜드가 영국이 아닌 아일랜드와 통일을 택할 수도 있어 영국도 마냥 안심하긴 쉽지 않다. 또한, 북아일랜드에는 여전히 종교적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등 지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브렉시트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의 경제 문제가 더 확실하게 대두되고 있다. 북아일랜드는 가뜩이나 영국 본토 내 취약 지역으로 그간 종교 분쟁으로 야기된 테러로 인한 피해자들이 많고, 그 손에서 자란 이들이 모두 정신적인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 사회적 긴장도가 높은 곳인 만큼 영국이 좀 더 확실하게 관리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3. 교량 건설 & 지브롤터

존슨 총리는 부임 이후 브렉시트를 확실하게 이끌면서 지도력을 일정 부분 입증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비켜가지 못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연히 영국내 야기되고 있는 사회적 부담은 가중됐다. 코로나 확산에 앞서 잇따른 폭우로 웨일스가 큰 피해를 입는 등, 재해의 문제를 여러 차례 겪게 되면서 영국의 위기도 점증했다. 무엇보다 스코틀랜드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강경한 탈퇴노선을 고집한 결과 북아일랜드 또한 존슨 총리에게 마냥 미온적이지 않다. 이를 지역별로 해석하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잉글랜드의 만류로 남았으나 정작 챙겨준 것이 없다고 여겨 스코틀랜드는 현재 모임 이탈을 강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에 존슨 총리는 대안으로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통해 그레이트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을 연결할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두 취약지역을 연결해 북아일랜드의 경제의존도를 아일랜드가 아닌 영국 본토로 옮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교량이 건설되더라도 브렉시트에 찬성한 동부 지역의 이점은 배가 되나 서부 지역은 여전히 아일랜드와 가까운 만큼, 막상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교량이 최종적으로 건설이되면 북아일랜드의 경우 영 본토와의 접근이 용이한 만큼, 경제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영 의회에서도 보수당이 압도적인 다수당인 만큼, 교량 건설에 따른 법안 통과는 무난히 이어질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엄청난 공사인 점을 고려하면 막상 완성되는데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불가피해 당장의 거취에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 반대로, 교량 건설을 통한 북아일랜드의 완연한 영국화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존슨 총리와 영 정부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와 민심을 설득하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지브롤터에서 야기되는 사안도 복잡하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브롤터도 유럽연합이 아닌 곳이 되면서 스페인과 국경 검열이 엄격해졌다. 북아일랜드와 마찬가지 문제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인구가 적은 곳이라 오히려 영국 입장에서 부담이 적으며, 지브롤터는 역사적으로 두 번의 주민투표 결과 스페인 귀속이 아닌 영국령으로 남길 희망하고 있어 독립할 소지는 현격하게 낮다. 하지만 사회적 부담이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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