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종교, 문화적 대립을 넘어선 해양 영토 다툼
그리스와 터키의 대결은 중세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정교와 이슬람을 대표하는 국가들인 것도 있고, 상이한 문명의 경계에 있는 만큼, 이들의 암묵적인 대결은 끊이지 않았다. 오스만투르크의 팽창으로 발칸반도가 콘스탄티노플의 손에 떨어지면서 입장 차이는 더욱 커졌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오스만이 약해진 사이 그리스는 국권을 본격적으로 되찾았고, 이후 지금까지 양 국은 해양 영토를 두고 꾸준히 대립과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에게해를 끼고 있는 가운데 많은 도서 지역을 두고 갑론을박을 멈추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1차 대전에서 승전고를 울리면서 현 터키의 영해가 대폭 줄었지만, 이는 피할 수 없은 결과였다. 그 사이 그리스는 고대에 누렸던 에게해의 제해권을 사실상 장악하면서 에게해와 동지중해의 많은 섬을 통해 해상자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에게해의 문제가 아직 완연하게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사이프러스를 둔 반목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사이프러스는 남북이 분단된 곳이다. 영국 해군이 진주하고 있으며, 국제연합사까지 더해 네 개 집단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나,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한반도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모두 UN에 가입된 회원국인 반면, 사이프러스는 사이프러스 공화국(남쪽)만이 국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북사이프러스 터키공화국(북쪽)은 터키를 비롯한 단 세 국가만이 이곳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즉, 국제법적 지위로 볼 때 남쪽(사이프러스)은 정식 국가이지만 북쪽은 국가가 아닌 셈이다. 반대로, 남쪽은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친그리스의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그리스와 사실상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즉, 사이프러스라는 작은 섬을 두고도 그리스와 터키는 꾸준히 대립해 온 것이다.
터키는 북사이프러스를 슬하에 두면서 사이프러스에 이권 개입은 물론 자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북사이프러스 인근에 다수의 유류 자원이 발견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사이프러스는 흡사 대한민국헌법처럼 남쪽이 북쪽을 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국제법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엄밀히 정의하면, 북쪽은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즉, 북사이프러스의 천연자원은 엄밀히 말하면 어느 곳의 소유도 아니라고 봐야 하며, 굳이 사이프러스가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후 승소해야 획득이 가능하다. 당연히, 터키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터키는 그간 북사이프러스를 동생대하듯 하면서 많은 이권을 가져갔으며, 이에 사이프러스는 법적 쟁송의 여지를 묻고 있는 셈이다. 터키 측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괴뢰정부(?)이거나 친터키 정부이기 때문에 유리한 협약을 통해 자원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며, 사이프러스와 그리스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북사이프러스의 영해를 두고 터키와 북사이프러스는 좀 더 폭 넓게 주장하고 있다. 사이프러스 영해의 상당부분이 북측의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 또한 당연히 어렵다. 설사, 북사이프러스가 국제사회로부터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관철이 어려운 논박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기존의 그리스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으며,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영국은 물론 그리스와 가까운 프랑스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사이프러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다. 그리스와 프랑스도 유럽연합 회원국인 만큼, EU의 영해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는 사안이다. 당연히 EU가 사이프러스 측에 서 있으며, 터키는 불리한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더 강하게 의견을 주장하고 있으며,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와 협력을 통해 자원 확보를 노리고 있다. 리비아는 2011년에 미국에 폭격을 당한 이후 정부군과 반군이 대립하고 있으며, 터키는 터키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반군 지원을 통해 우군 확보를 노리고 있다. 반군이 리비아에서 최소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최대 분리/독립까지 일궈낼 경우 해양자원 확보에 좀 더 다가설 수 있어서다. 터키와 리비아은 동지중해를 둔 사실상 이웃인데다 정부군은 오히려 알제리쪽에 가까운데다 리비아의 동쪽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 서방사회가 정부군을 후원하는 사이, 터키는 이를 활용해, 리비아의 균열을 활용해 이권 획득에 성큼 다가 서 있는 셈이다. 터키 측,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서방에 협력하기 어렵다면, 이게 최선인 셈이다.
터키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이유는 동지중해에 다량의 유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에 사이프러스 문제를 본격적으로 대두하면서 유전 확보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지중해의 유전은 지리적으로 터키와 거리가 멀다. 터키는 최근에 흑해에서 유전을 확보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누린 가운데 동지중해까지 욕심을 내고 있다. 터키 입장에서는 영해와 베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s)을 주장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긴 하나, 사이프러스가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 유전 확보를 주장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면이다. 이에 북사이프러스로 하여금 영해 분쟁내지는 확보를 노리면서 장기적으로 터키가 동지중해(이집트, 레바논, 팔레스타인 사이의 인접 지역)의 유류 자원을 확충하겠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터키는 그리스와 영해, 사이프러스, 동지중해 영유권까지 세 가지를 두고 반목하고 있다. 터키 측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의 손에 유전을 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이익을 차지한 셈이다. 자기 손에 넣지 못할 것이라면 외교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상대에 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손실은 막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터키는 북사이프러스와 함께 동지중해의 영유권 주장을 강경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법적, 외교적으로 터키가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다. 북사이프러스가 국가라고 하더라도 북사이프러스의 영해는 당연히 북쪽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도 아닌 만큼, 사이프러스가 오히려 영해의 지위권을 쥘 수 있다. 다만, 분쟁적 요소가 많아 적극 주장하지 않는 셈이다. 이에 리비아 반군까지 통해 동지중해 제해권 확보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와 사이프러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미 프랑스가 그리스 측에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만큼, 사이프러스는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다. 사이프러스가 1선에서 대립하고 있는 사이 그리스가 2선에서 버티고 있으며, 추후 프랑스까지 더해 외교력으로 밀리지 않을 여건을 확실하게 마련했다. 터키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수 있으나, 터키가 EU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며(북사이프러스는 국제법적 국가도 아닌 상태), 사이프러스와 그리스는 모두 EU에 적을 두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당연히 유럽이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의 편에 설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터키는 다양한 외교력을 통해 적어도 그리스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프랑스의 간접적인 개입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간 북사이프러스를 대한 태도와 이슬람이라는 문명적 이질까지 더해 서방과 철저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여기에 에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간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필요 이상으로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우군 확보는 고사하고 그리스 측으로 돌아서게 하지 못하게 하는 외교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반대로 보면, 군사적 긴장감이 점증한다면, 그리스와 터키 모두 NATO 회원국인 만큼 같은 입장을 유지해 오히려 외교전으로 판을 넓혀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지인이 아니라 자세한 파악은 어렵지만, 여태껏 행보를 보면) 서방 측 지도자들과 협업적 관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즉, NATO라는 집단방어체제 안에서도 터키가 그리스에 맞서 이권을 주장할 시, 회원국 다수가 유럽국가인 만큼, 터키 측에서 입장을 동조해 줄 이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돌이켜 보면, 그랬기에 좀 더 외교적 협업이 필요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 부임 이후 외교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한 주장을 통해 (터키 입장에서) 삐딱할 수 있는 서방의 지도자들이 더 터키에 동조할 수 없는 자세를 취하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