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세상에서, 관계에서, 나 자신으로부터. 그냥 모든 것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스물일곱 살 가을,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일은 꼬였고, 관계는 어긋났고, 나 자신마저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전화도, 메시지도, 모두 무시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만의 어둠 속에 있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이 상황에서, 이 감정에서, 이 나로부터. 존재 자체가 무거웠다. 숨 쉬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모든 것이 버거웠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현실에서, 책임에서, 나 자신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 아무도 나를 기대하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방 안은 점점 어두워졌다. 커튼을 치고, 불을 끄고, 세상과 나를 차단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하루인지, 이틀인지, 일주일인지. 시간의 감각이 사라졌다.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고, 졸려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밥은 먹었니?" 그 짧은 말이 나를 현실로 끌어냈다. 나는 아직 여기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있었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가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웠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힘들지?" 그 말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방 밖으로 나왔다. 하루에 한 번씩, 짧은 산책을 시작했다. 햇빛을 쬐고, 바람을 느끼고, 사람들을 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사라지고 싶었던 날은 지나갔다.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을 견뎌냈다. 때로는 그런 생각이 다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생각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힘든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여기 있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사라지고 싶었던 날을 견디고 나니, 나는 조금 더 강해졌다.
서른한 살인 지금, 나는 그때를 돌아본다.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견뎌내서 다행이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그날을 버텨냈기 때문이다. 사라지고 싶었던 날도 내 삶의 일부다. 그날이 있었기에, 오늘이 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