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형광등은 언제나 너무 밝다. 열두 명이 앉은 테이블 위로 자료가 빔으로 쏘아지고, 누군가는 쉴 새 없이 말하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머릿속에는 의견이 가득하다. 이 프로젝트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 더 나은 대안.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그럼 네가 해봐." 이 한마디가 두렵다. 의견을 내는 순간 책임이 따라오고, 책임은 야근으로, 주말 출근으로, 끝없는 수정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미 내 몫의 일로 벅찬데, 더 떠안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입을 다문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뒤, 내 자리로 돌아와 혼자 한숨을 쉰다.
이게 비겁한 건가? 책임회피인 건가? 한동안 나 자신이 싫었다. 회사 생활 초반에는 달랐다. 신입 때는 의견도 많이 내고, 손도 번쩍번쩍 들고,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자원했다. 그게 성장이라고 믿었다.
5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자원했던 일들 중 절반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람의 공으로 돌아갔다. 열정은 소모품이었고, 나는 조금씩 닳아갔다.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너 요즘 회의 때 조용하더라. 무슨 일 있어?" 나는 웃으며 "별일 없어요. 그냥 듣고 있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전략이야. 꼭 말해야 할 때만 말하는 것도 능력이지."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입을 다무는 것도 선택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것도 생존 방식이라는 걸 인정해도 되는 거구나.
요즘은 회의실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최소한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라고 말해준다. 언젠가 다시 말하고 싶을 때가 올 것이고, 그때는 제대로 말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버티는 중이다.
버티기는 때로 침묵이다. 싸우지 않는 것, 반응하지 않는 것, 그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그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고, 충분히 용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