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by 고양이

비가 오는 날.

습도가 높아 눈이 덜 건조한 날엔 기분마저도 더 선명해진다.

그럼 그 또렷함을 참지 못하고 글로 옮긴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니까.

나는 어쩌면 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혼자 있는 순간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아는 방법은 음식뿐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그래야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야 더 단단하고 더 강하고 더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관찰하면, 그리고 내가 뚱뚱한 사람들을 쳐다보는 방식을 봐도 알 수 있었다. 무거운 사람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록산 게이, 『헝거』, 28쪽


다이어트나 자기 관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숨으려고 커지는 것을 선택했다.

덜 보이기 위해서 더 커지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안전하게 느껴졌다. 요동치면 마음도, 뒤죽박죽 된 머릿속도 글을 쓸 때면 잠잠해졌다.

록산 게이가 몸을 키워 자신을 지키려 했던 것처럼 나도 문장을 늘어놓으며 나를 지키고 있었는지 모른다.
몸이 바깥으로 두꺼워지는 방식이 있다면, 마음은 안쪽으로 깊어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숨기기도 하니까.


쓰는 동안에는 아무도 나를 바로 침범할 수 없었다.
말은 누군가의 표정 앞에서 흔들리지만 글은 한 번 종이 위에 놓이면 조금 더 오래 버텼다.
입 밖으로 내면 금세 후회할 말도 문장 속에서는 잠시 가라앉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모양으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좋아한 것은 글 그 자체라기보다 글을 쓰는 동안의 고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으로부터 아주 조금 물러나 내 감정의 숨소리만 들을 수 있는 시간.
오직 나만의 리듬으로 생각이 움직이고 그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은 때때로 외롭지만 동시에 가장 정직한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살아남는 방식은 대개 설명하기 어렵다.
왜 하필 그 방법이었는지, 다른 선택은 하지 못했는지, 나중에 와서는 나조차 잘 모를 때가 많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그 방법으로라도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록산 게이에게 음식이 그랬듯 어떤 날의 나에게는 글이 그랬다.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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