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by 고양이


잘 쓰다가도 쓰는 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없고 가치가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또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길 며칠이 반복되고 있다.

오늘은 좀 쉬려고 영화를 봤는데, 젠장 그래서 또 쓰고 있다.



여름의 한복판,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던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같은 온도를 나눴다.

같은 음악을 들었고 같은 장면에서 비슷하게 웃었다.


영화 속 이별은 대개 거창하다.

비가 쏟아지고 누군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누군가는 뒤돌아서며 마지막 말을 던진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이별은 그렇게까지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식이다.

같이 듣자던 음악을 혼자 듣는 사람,

같이 보자던 장면을 먼저 넘겨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는 사람.


이별은 선언이 아니라 미세한 방향 전환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큰 실수 때문에 헤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작은 무관심이 쌓여 하나의 결말을 만든다.


선풍기 바람을 나누지 않는 일,

음악을 함께 듣지 않는 일,

사소해서 말하지 않았던 수많은 선택들.


그 조용한 선택들이 결국 서로를 다른 계절로 데려간다.


“우리는 그래서 헤어진 걸까.”


이 질문은 사실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답을 천천히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은 늘 조금씩 자기 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피곤한 날에는 혼자 있고 싶고,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먼저 듣고 싶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진다.


그 작은 ‘혼자’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를 밀어낸다.

그래서 어떤 이별은 누가 더 나쁘다기보다 누가 더 먼저 혼자가 되었는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차린 사람이 더 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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