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왜 다 나한테만 와.

by 고양이

'힐링 야유회'라고 했다.
숲 냄새가 난다. 바람이 불고,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고, 사람들은 웃고 있다.

그런데 조금 뒤에서 바라보면 이상한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힐링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하늘을 본다.
“오늘 날씨 좋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누구는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몇 시에 이동해야 하는지, 누가 아직 안 왔는지, 식당은 예약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같은 장소에 있지만 어떤 사람의 하루는 느슨하게 흐르고 누군가의 하루는 계속 단단하게 묶여 있다.


힐링이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쉰다고 말하면서도 왜 자꾸 쉼을 계획하는 걸까.

힐링 여행, 힐링 프로그램, 힐링 워크숍.

쉼에도 이름을 붙이고 일정표를 만들고 시간을 맞춘다.(강박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어도 되는 순간.

이런 시간을 원하지만 불가능하다.

아마 예산이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무언가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과, 보고서, 사진, 프로그램 이름.

행정이라는 세계에서는 쉼조차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캔커피를 마시는 순간일 수도 있고,

해야 할 일을 잠깐 미뤄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몇 분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준비해 준 프로그램 속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잠깐의 틈 속에서 나는 그것들을 주로 발견했다.


누군가 돗자리를 펴려다 흙먼지를 뒤집어쓴다.
어떤 사람은 바비큐 연기에 눈물을 흘린다.
또 다른 이는 게임에서 어설프게 넘어진다.

그 장면을 보며 사람들은 웃는다.

“아, 나만 어설픈 게 아니었구나.” 그 순간 묘한 안도가 지나간다.

조금은 얄궂고, 인간적인 감정.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불행을 보며 느끼는 은근한 안도감.


생각해 보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완벽한 행복 앞에서는 조금 긴장한다.

모두가 너무 즐거워 보이면 괜히 마음이 어색해진다.

하지만 누군가가 소소하게 실수하고, 어설플 때면 잠깐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살짝 넘어지고, 고기를 태우고 누군가는 길을 잘못 찾는 순간.

서로의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게 보인다.

완벽하게 행복한 자리보다 조금 어설픈 자리가 더 편한 이유다.

누군가보다 더 잘 쉬고 싶은 게 아니라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느낌 속에서.


그 웃음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캔 음료를 들고 천천히 앉는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진짜 힐링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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