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거리를 둔다.
손을 덜 잡고 마주 보지 않으며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까워야 옮으니까.
가까워야 옮는다.
병만 그런 걸까.
누군가와 오래 마주 앉아 있으면 그 사람의 말투가 옮고 습관이 스며들고 심지어는 마음의 방향까지 닮아간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정 같은 건 특히 더 그렇다.
한 아이가 떠올랐다. 스스로 지칠 만큼 남을 배려하던 아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아이의 부모 앞에서 나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아마 가까이서 다정을 오래 접했을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 당연하게 건네지던 이해. 이런 것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옮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병이 그렇듯 옮은 뒤에는 선택할 수 없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조금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정말 다정은 좋은 것일까.
누군가를 계속 신경 쓰게 만들고 내 마음의 에너지를 조금씩 꺼내 쓰게 하고 결국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방식이라면. 그건 치료해야 하는 상태에 가까운 건 아닐까.
그래도 이상하게 나는 이 결론을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다정이 병이라면 우리는 왜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을까.
오히려 더 가까이 가려고 할까.
아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병이 나를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든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거리를 두면서도,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는다.
옮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도 결국은 다시 가까워진다.
다정은 병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완치되기를 바라지 않는 종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