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스텐드에 백 원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작은 원은 마치 나를 호출하는 알림 같았다.
진동도, 소리도 없이 그저 빛으로만 존재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나는 멈춰 섰다.
요즘의 나는 모든 것을 ‘터치’로 해결한다.
결제도 이체도. 돈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다. 흐른다.
전선과 회로를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강처럼.
그래서일까. 그 동전은 이상할 만큼 낯설었다.
너무 작고, 구체적이라서.
손에 쥐면 무게가 느껴질 것 같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
집에 있는 돼지저금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동전을 넣을 때마다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던 시간들.
딸그락,
그 소리는 마치 내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쓰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지금의 나는 그 소리를 잃었다.
대신 잔액 숫자를 본다.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결국은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숫자.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한 번도 ‘쥐어본 적’이 없다.
백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본다.
화분을 받친다.
저금통에 넣는다.
그리고. 멈춘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떠올릴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백 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삶.
편리함은 때때로 사고의 범위를 줄인다.
가능성을 없애는 대신 불편함을 제거해준다.
결국 나는 그 동전을 집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떤 사람은 그걸 주워 아무 이유 없이 주머니에 넣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무언가를 주워보는 일.
쓸모를 따지지 않고 그저 손에 쥐어보는 일.
그건 아마, 지금의 나에게 백원보다 더 비싼 감각이었을까.
나는 다시 걸었다.
결제는 여전히 빠르고, 세상은 매끄럽다.
다만 가끔은 주머니 속에서 아무 의미 없이 굴러다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명되지 않는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그러나 분명히 ‘있는’ 것.
당신은 가끔 이유 없이 나를 웃게 하고,
별 의미 없는 말로 하루를 조금 덜 무겁게 만들어주고,
딱히 ‘쓸모’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하루에 남아요.
나는 그게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