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그 안에 들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받으면 기분은 분명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스칠 것 같다.
'아, 나는 나머지 30에는 속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받지 못한다면 또 다른 마음이 올라올 것이다.
'왜 맨날 나만 이럴까. 나보다 더 잘 버는 사람들도 잘만 받는 것 같은데. 이래서 유리지갑은 손해다.'
그 몇십만 원이 내 하루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기분을 휘저어놓았다는 사실에 괜히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진다.
나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라고 혼자 중얼거리듯 생각하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은행 앱을 연다.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얼마가 들어왔다는 알림이 뜨면 하루가 조금 가벼워진다.
쌓이면 무거워지는 것이 물리법칙일 텐데 이상하게도 돈은 그 법칙을 거스른다.
많아질수록 가벼워지는 것들.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늘 받을 돈만 들어와 있었다. 나에게 눈먼 돈이라는 건 없다.
어제는 ‘수업디자인’이라는 제목의 연수를 들었다. 하지만 그건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방식을 믿는 사람들의 확신에 가까웠다. 하나의 방식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목소리들.
나는 그 효과가 정말로 증명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못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을 감거나 휴대폰 화면을 넘기거나.
소수의 열렬한 신자들과 대다수의 무관심한 사람들.
그 사이 어딘가에 앉아 있다 보니 하루가 유난히 피곤해졌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버거운 마음이었다.
길을 걷다가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를 주문했다.
나는 한여름에도 아이스를 잘 마시지 않는다. 그날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1층 테이블에는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단 채로 앉아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 앞에는 음료와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태블릿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아마도 가장 가까운 친구였을 사람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각자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주문을 했고 잠깐 그들을 등 뒤에서 바라보았다.
아니, 누군가는 정면에서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으니까.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해야 할 일의 80퍼센트 정도를 끝냈다.
돈을 내고 당분과 씁쓸함을 함께 맛보는 것.
그 정도면 괜찮은 하루였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묻게 된다.
나는 70일까, 아니면 30일까.
아니면 숫자로 나눌 수 없는 어떤 상태로 오늘을 겨우 통과한 사람 1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