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물고기 사이에서

by 고양이


나는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지를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감정의 진폭을 유지한 채로 익숙한 공간 안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결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의 눈빛이었고 낯선 도시의 공기였으며 단순하게는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럴 때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그 바깥이 나에게는 너무 넓고 깊다는 진실을.


조제에게 호랑이는 그런 세계였다.

강하고 자유로우며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그 자유는 그녀에게 가능성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웠다. 호랑이는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감당해야 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를 이상적인 것으로 상상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자유는 방향을 잃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을 내딛을 수는 있지만 그다음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유는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사랑도 자유의 모습과 닮았다.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다음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사랑도 퇴색하기 마련이다. 그걸 사람들은 '지쳤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물고기는 조제가 머무는 방식이다.

물속이라는 한정된 공간, 정해진 깊이, 익숙한 온도.

그곳은 넓지 않지만 숨을 쉴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잃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다.

흔히 이런 공간을 ‘갇힘’이라고 부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삶의 전부이자 균형이다.

모든 선택이 가능한 상태보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더 안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물고기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다.

자신이 헤엄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알고 그 경계를 넘지 않는 대신 그 안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안다.


문제는 이 두 세계가 서로를 향해 기울어질 때 시작된다.

호랑이와 물고기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 없다. 한쪽은 숨을 쉬기 위해 물이 필요하고 다른 한쪽은 물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그 불가능한 교차를 시도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서로의 세계를 완전히 건너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잠시 발을 담글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이별은 실패가 아니라 확인에 가까운 게 된다. 서로를 좋아했지만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는 조용한 인정. 그 인정은 비극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한 모양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나의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고 나 역시 상대의 세계를 무리하게 침범하지 않는 것.

그저 각자의 호흡을 유지한 채 잠시 겹쳤던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사람은 결국 호랑이일까 아니면 물고기일까.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래가지 않아 다른 형태로 변한다.

우리는 과연 하나의 세계에만 속할 수 있는 존재일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한 발은 물속에 한 발은 땅 위에 두고 완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그래서 더 자주 흔들리고 더 자주 갈망하고 포기한다.


조제를 떠올리면 그녀는 끝내 물고기로 남는다.

그녀는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세계를 욕망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숨 쉴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자기 이해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묻지 않는다.

무엇이 더 옳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대신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은 어디에서 숨 쉬고 있는가 그리고 그곳이 정말 당신의 세계인지.'



붙잡고 싶은 마음과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이 한 몸처럼 겹쳐질 때, 나는 비로소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이 사랑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사랑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낼 때가 있다.

조제는 울면서 붙잡았고 결국은 다정하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츠네오는 그 집을 나선 뒤에야 울음을 터뜨린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조금씩 늦게 도착하는 감정들.

우리는 늘 같은 순간에 같은 마음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해는 언제나 한 박자 늦게 우리를 따라온다.

마치 이미 지나가버린 장면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비처럼.

작가의 이전글나는 70일까, 30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