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깨알 Tip이라고 했다.
원두가루를 냉장고에 넣어두면 탈취효과가 좋다고.
평소 냉장고에서 김치냄새가 나는 게 싫어 이중, 삼중 포장하여 보관하는 나는,
자신의 진혈(眞血)을 이미 내놓고 종이필터에 축 늘어져 있던 원두가루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다음부터는 기분 탓인지 왠지 새콤하고 쿰쿰한 냄새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나를 덮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야채를 꺼내다가 포장지 끝부분에 걸려 원두가루 담긴 종이필터가 넘어졌다.
3칸으로 되어있던 냉장고는 무언가가 폭발한 듯이 검은 가루로 뒤덮였다.
그 가루들은 선반과 그 위의 밀폐용기 사이사이로 들어가 닦아내도 어디에선가 계속 나왔다.
몇 주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검붉은 알갱이가 발견되곤 한다.
감정은 뿌려진 원두가루 같아서 닦아내도 어딘가에서 자꾸만 발견된다.
새로 만들어지는 거라면 '그래 맘대로 해봐'라며 자포자기라도 할 텐데,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불쑥 어디에선가 튀어나올 때면 그동안의
노력이 쓸데없는 짓 같아서 나도 모르게 냉장고 문을 붙잡고 주저앉게 된다.
정말 힘든 건 걸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몸이 울컥거릴 때다.
혼자 감정을 쌓고, 누르고, 삼키는 게 버릇이 돼버린 나의 몸을 통로로 어떤 감정이 탈출을 시도하려는 것만 같았다.
그 들썩임은 '이건 울 타이밍이야.'라고 몸이 보내는 알람 같기도 했다.
그걸 무시해 버렸다.
‘괜찮아. 그냥 지나가는 감정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덮어버렸다.
그래서 항상 울음도 아니고 통증도 아닌 기묘한 움직임이 내 안에서 전해졌다.
‘구충제를 언제 먹었더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몸이 들썩일 때 그걸 멈추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방지턱을 넘을 때의 그런 둔탁한 충격이 나를 덮칠 때면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억누른 감정을 몸이 알려줬다. '이 감정은 아직 처리되지 않았어.'라고.
책상위 노트북 화면에는 ‘업데이트 58% 진행중. 전원을 끄지 마세요.’란 문구가 떠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왠지 기다려주고 싶었다.
‘너도 시간이 필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