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와 체념 사이
햇빛이 반쯤 투과된 얼음덩이 밑.
내려갈수록 빛이 닿지 않아 점점 어두워지는 곳.
온기도 사그라드는 추운 공간, 그곳을 느리게 움직이는 거대한 물체.
"그린란드 상어는 500년을 산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살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 말을 듣자 머릿속에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가 나에게 물어본 거였는지 아니면 혼잣말이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으니 그건 혼잣말이었겠다고 생각했다.
고요한 세계 속에서 500년을 견디며, 그는 쓸쓸했을까 아니면 지루했을까.
이곳에서는 연산군이 폐위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그는 빛이 도달하지 않고 소리도 퍼지지 않는 곳 어딘가에서 여전히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잠잠해진다.
"그린란드 상어는 1년에 1센티미터씩 자란데요, 제일 큰 건 7미터에 이르고요."
그의 혼잣말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걸 듯, 아니 어쩌면 나에게도 들리기를 바랐던 걸까.
속도가 아닌 깊이로 시간을 재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 존재 앞에서 얼마나 초조하고 시끄러울까를 생각했다.
궁금한 걸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보다 휴대폰을 집어드는 게 더 쉬웠다.
견디지 못하고 검색해 본 결과 차가운 수온 탓과 느린 신진대사가 장수의 원인이라고 했지만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른다고 했다.
또 그린란드 상어는 매우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데, 아기의 걸음마 속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먹이는 물개나 북극곰까지 매우 다양하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느린 속도로 먹이를 얻을 수 있는지는 역시나 아직 구체적으로 관찰된 적은 없다고 했다.
요즘엔 자기 안의 비밀을 끝까지 품고 있는 존재가 드물다.
그래서 이상하게 그린란드 상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성어가 되기까지는 150년이 걸린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까?"
태어날 때 본 얼음과 지금의 얼음은 서로 다른 시간과 언어 그리고 다른 별빛을 담고 있겠지.
그러나 그는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처럼 '과거'를 끌고 다니는 존재는 없으니까.
그에게 500년은 누적된 시간이 아니라 단지 지금 이 순간이 500년 동안 이어진 감각 아닐까.
매일 똑같은 시간을 500년 동안이나 반복하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그곳에서 그는 외로움을 몰랐을 것 같다.
왜냐하면 외로움은 비교를 전제로 하는데 그는 늘 혼자인 모습이었으니까.
구글 이미지로 본 그는 단 한 번도 군집을 꿈꾼 적이 없으며, 사이사이를 메우는 침묵을 낯설어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그는 한 번쯤 인간 문명이 내뿜는 열과 소음을 물속 먼 곳에서 희미하게 감지했을까.
‘세상이 바뀌었구나.’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을까.
아니 혼잣말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이란 불안을 가진 존재의 거추장스러운 소유물이기에.
그의 500년은 속도의 반대말 같았다.
반짝이고 치열하게 타오르는 삶의 반대편에
묵직하고 무심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의 존재 자체가 증명하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어떤 감정이 있다면 그건 아마 체념 같은 평온함이 아닐까.
세상과 거리를 두고 모든 소멸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다 지나간다는 것을, 잊힌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혼자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이미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