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가르친다는 것

by 고양이

스스로 설계한 삶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재인용


어린 시절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으로 그를 처음 접했다.

끙끙거리며 읽었는데, 무언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게 있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글은 사랑한다.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때론 완전 별개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어서일까.


내가 속한 곳은 매일 정답을 가르치려 혈안이 되어있는 곳이다.

가르치는 것도 가르침을 받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것도 근거가 미약한 것을 정답이라고 우길 때면 울고 싶어 졌다.


위에 쓴 문장은 그가 밀의『자유론』에서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정답은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정답을 모른다. 정답보다는 오답을 고를 때가 자주 있었고, 생각하다가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커다란 산타할아버지 인형을 구입했다.

전원을 연결하면 아랫부분에 달린 프로펠러가 공기를 주입하여 납작했던 산타가 입체적인 모습을 갖추어갔다.

연말이 되면 중앙현관에 어김없이 산타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해 놓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한동안 그곳에서 잡담을 하거나 조용히 머물렀다.


"00이 산타인형을 안아 넘어뜨리려고 하는 거예요."

"아이고, 윤리의식이 없는.."


사실 나도 보았다. 아이들이 산타의 말랑한 팔에 매달리던 모습을, 안고 웃던 순간을.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쭈뼛쭈뼛 그 인형 주위를 맴도는 걸.

나는 그냥 살며시 웃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무책임하다고 하거나, 저런 사람 때문에 아이들 교육이 안 된다고 할지 모른다.

내가 본모습과 그들이 본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공공기물 파손 행위'가 나에게는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비친 건,

내가 애정결핍 때문이라서 그런 걸까?


현실에서 윤리, 도덕은 옳고 그름을 위하여 존재하는 말이 아니라 통제나 억압의 뉘앙스로 많이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뭐만 하면 윤리, 도덕. 조금 지겹다.'


산타인형을 처음 사서 전원을 연결한 순간 나도 모르게 안을 뻔했었다.

인형 안을 채우는 공기가 그렇게도 포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결국 안고 싶은 마음과 공공기물 파손 행위라는 그 간격을 나는 도저히 좁히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도, 나의 생각도 오답은 아닐 것이다.

아니 나는 오답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실수도 잘못도 용인되는 곳이다. 이곳은 사회의 모든 평가와 잣대가 침범하지 않은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라고 항상 생각했다. (땡?)

오답도 아프지 않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이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르치는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저 바라본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이렇게 끝났다.

"어쨌든, 잘했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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