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메신저에 장문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 교환식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씩 준비해 주세요."
익숙한 사무실의 반복되는 연말이지만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사무실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하~'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 받고 주는 일이 싫었던 게 아니다.
그저 받고 싶지 않았고, 주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대부분 이미 가지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건 스스로 채워도 충분했다.
그러니 누군가의 취향과 의도가 담긴 작은 선물이 내게는 그저 '예쁜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받았으니 줘야 하는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선물을 내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는 방식.
그건 ‘선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물물교환 같았다.
화폐가 사용되기 이전, 혹은 화폐 없이 거래가 이루어질 때 재화나 서비스를 서로 맞바꾸는 행위.
현대 사회에서는 화폐가 그 기능을 대신하지만 '상호 교환성'이라는 개념은 끈질기게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선물 교환도 결국 물물교환의 현대적 버전일까.
가끔은 청개구리 같다고 주변사람들이 말했는데, 또 그 마음이 발동한 것 같았다.
자발성이 빠진 교환은 ‘선물’이 아닌 ‘기브 앤 테이크’ 아닌가.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그러한 행위를 할 필요가 있나.
나에게 선물이란 언제나 누군가 내게 주었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던 기억뿐이지, 주고받은 기억은 아니었다.
주고받는 순간 너무 계산적인 것 같아서, 어쩔 때는 받고 나서 한참 있다가 주기도 했다.(이건 덜 계산적인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큰 테이블에 선물들이 하나둘 올라와 있었다.
주무자가 그것들을 정성스레 펼쳐놓았고 팀원들 대부분이 거기에 자신의 선물을 올려두었다.
다른 부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우리 부서는 전원 참석이었다.
나만 빼고.
이제 선택해야 했다.
그냥 모니터 앞에 조용히 앉아 있을까.
혹은 박수라도 쳐주러 자연스럽게 다가갈까.
아니면 그 자리를 슬쩍 피해 밖으로 나갈까.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가까이 다가갔다.
어색한 웃음으로 박수를 쳐주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오늘 오후에 있을 약속 장소를 예약했다.
나는 반차를 내고 그들과의 이브가 아닌, 나만의 이브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했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선물 포장을 뜯고,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들이 꽤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왜일까.
이것이 사회생활이고, 직장 생활의 윤활유 같은 이벤트라고.
그러니까 혼자 너무 예민할 필요 없었을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왜 이 상황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질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지만 그 안에는 소속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분명 선택이었지만 선 긋기의 외로움이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밀려왔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날엔 마음을 전하지 않는 것도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누구에게도 선물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선물을 주고받는 그들의 얼굴에는 정말 행복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세상을 힘들게 사냐?"
"지팔지꼰이다."
이런 말을 들어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게 나에게는 더 괴로울 때가 있다.
나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또 만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