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진 좀 찍어 주실 수 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러 쌍의 눈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중 나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사람이 선선히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미 선택은 끝난 분위기였다.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찍어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의 휴대폰을 만지는 게 괜히 부담스러웠고, 낯선 사람들에게 “하나 둘 셋, 치즈”를 외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어깨가 먼저 움츠러들었다.
사소한 부탁인데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복잡해질까 싶었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
“아, 죄송해요.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는 내 쪽을 한 번 보고 “빨리 가자.”라고 덧붙였다.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괜히 미안해하지 않고, 상대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는 거절.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선을 지켰다.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는 너무 많은 상황에서 ‘괜히’ 부탁을 들어준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냉정해 보일까 봐. 눈치 없어 보일까 봐, 분위기를 망칠까 봐.
그래서 스스로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는 괜찮잖아.’
‘별일도 아니잖아.’
하지만 별일 아닌 일들이 하루하루 쌓여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날 이후로 자주 생각하게 됐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차가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그들은 단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싫어요’라고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는 것도.
나는 부탁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건 더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혼자 하는 게 더 편해.', '이건 다른 사람에게까지 맡길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냐.'라며 혼잣말로 마음을 눌러 앉혔다.
누군가는 내 그런 모습을 보고 백조 같다고 말했다.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모습.
하지만 그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 물아래에서는 쉬지 않고 발을 휘젓고 있을 거라고.
그 말이 웃기면서도 내 처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니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나는 늘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다음엔 다른 사람이라면 이걸 정말 혼자 했을까라는 생각이 꼭 따라온다.
나는 항상 버거운 일을 내 몫으로 끌어안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