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피드백이 돌아온다.
그것은 호의일 수도 있고 비아냥이거나 때로는 무반응일 수도 있다.
무반응 역시 하나의 반응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계속 쓰는 사람을 모욕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쓰는 사람을 모욕하는 건 쉽지 않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었다.
책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선뜻 떠오르지 않지만 그 문장만은 남아 있다.
계속 쓰는 사람은 대개, 바람을 견디는 사람이니까.
작년에 심어두었던 팜파스가 올해 드디어 꽃을 밀어 올렸다.
창문 너머로 은빛 꽃차례가 햇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인다.
(하얀 깃털처럼 보이는 부분은 수술이 아니라 여러 꽃이 모여 있는 꽃차례라고 한다.)
작년 여름, 흙 속에 겨우 뿌리를 묻던 작은 줄기가 이제는 겨울바람에 몸을 기울일 만큼 훌쩍 자랐다.
눈이 내려 어깨가 하얗게 젖어도,
차가운 공기가 깊숙이 스며들어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기에 흔들리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어디선가 자주 들어 닳아버린 문장 같지만.
흔들림이 없었다면 나는 위로를 몰랐을 것이다.
콘크리트는 무너지지 않는 대신 말이 없다.
그러나 팜파스는 부서질 듯 가벼운 몸으로 바람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 단단히 엉켜 있던 걱정이 조금씩 풀려 흩날린다.
당신의 흔들리는 모습이 가끔은 안쓰럽다.
바람이 거셀까 봐, 눈이 너무 무겁게 쌓일까 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흔들림이 나를 살린다.
당신이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나 역시 아주 조금 기울어 가슴 깊이 고여 있던 통증을 흘려보낸다.
서로를 붙잡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함께 흔들린다.
어쩌면 위로란 넘어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미미한 복원력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창문 밖에는 팜파스처럼 서 있는 당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