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나는 그렇게까지 열정적인 연대를 원하는 게 아니다

by 고양이

워크숍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그리고 앞으로도 왠지 질리도록 들을 것 같은 말.

'공동체 의식.'


그 말은 언제나 옳은 얼굴을 하고 있다. 반박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하는 말도 아니고 오히려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것 같은 문장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동의하지 않으면 내가 어딘가 삐뚤어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아이들 교육의 중심을 공동체에 두라고 한다.
개인의 개성보다 함께의 조화를, 내 감정보다 타인의 입장을 먼저 떠올리라고.

나는 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쪽이 자꾸만 말랐다.


가끔은 공동체라는 단어가 거대한 수조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를 조금씩 희석해야 한다.

발색이 강한 물감은 적당히 풀어야 하고 튀는 색은 톤을 낮춰야 한다.

그렇게 투명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잘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순간 나는 거의 물에 가까워진다.
색도 없고, 향은 희미해지고, 거슬림도 없는 상태.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이 찬다.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아이들도 꽤 이를 악물고 버틴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애쓰고, 말 한마디를 신중히 고른다.

혹시라도 이기적으로 보일까 봐 내 생각을 숨긴다.

그런데도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는 말은 너무 쉽게 나온다.


그들이 상상하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하나의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동일한 박자로 손뼉을 치고,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들.
갈등은 짧고, 결속은 길게, 그리고 질문은 최소한으로.

그들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으며 그 일에 10여 년 이상을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 일에 대한 비판은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느낄 것 같다.


나는 그렇게까지 열정적인 연대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함께 있고 싶을 뿐이다.
과하게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는 거리에서.
내가 나로 남아 있는 채로.

‘나보다 너, 우리’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반복되면 기묘해진다.

나를 계속 뒤로 미루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가 어디까지 밀려났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언젠가는 내 감정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괜찮아요”를 말하게 된다.

그게 과연 건강한 공동체일까.


어쩌면 나는 공동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광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강하게 외치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금세 눈에 띄게 된다.

눈에 띄는 순간 이미 ‘문제적 개인’이 된다.

그래서 더 투명해지려고 애쓴다.


하지만 공동체가 나를 지우는 공간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윤곽이 조금 남아 있어도 괜찮은 공동체.

“저는 조금 힘듭니다”라고 말해도 분위기를 망쳤다는 눈빛을 받지 않는 자리.
열렬하지 않아도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방식이 허용되는 공간.

나는 그런 공동체를 상상한다.


'으쌰으쌰'의 온도는 나에게 조금 뜨겁다.
나는 조용한 온기를 더 믿는다.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이어지는 연결.
나를 잃지 않아도 가능한 함께.


혹시 제가 이기적으로 보인다면 그건 아마 나를 지우는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아서일 거예요.

제가 원래 좀 느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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