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별이 잘 보인다.
어둡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서 있어서 퇴근길엔 조금 무섭다.
쓰레기봉투 사이에서 길고양이가 훅 튀어나오고,
어두운 담벼락 아래에서는 검은 물체가 움직인 것 같아 괜히 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입김이 올라오는 밤이면 그 불친절한 거리도 갑자기 별을 위한 배경이 된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사실 과거형이다.
몇 년 전의 빛, 어쩌면 몇백 년 전의 신호다.
빛은 도착했지만 실체는 없을 수 있다.
어제의 일은 오늘보다 덜 선명하다.
실수나 후회 같은 건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진짜 상처는 대개 현재형이다.
지금 옆에 앉은 사람의 한 마디. 벗어날 수 없는 이곳의 분위기.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자리.
인간관계가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다. 노동이다.
퇴근했는데 퇴근 아닌 느낌.
첫인사보다 먼저 만들어진 단톡방. 목적이 업무용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별이 빛나는 밤에도 일거리를 던진다.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휴게실이 있다면 좋겠다.
근처 카페에라도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나는 왜 수백 년을 건너온 빛에는 경탄하면서 바로 옆 사람의 한 마디에 쉽게 무너질까.
별빛은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말을 얹지도 않고, 표정을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보고, 해석하고, 지금 나에게 반응한다.
그래서 자주 움츠러든다.
상처도 빛처럼 조금 늦게 도착하면 좋겠다.
그 말이 바로 마음에 닿지 않고 몇 년쯤 돌아서 왔으면 좋겠다.
그 사이에 나는 좀 더 단단해졌을 테니까.
지금은 아프다. 다행히 시간은 계속 움직인다.
별은 몇백 년을 건너왔는데 나는 오늘 하루를 건너는 게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