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랑의 문법

by 고양이


그녀는 나보다 키도 덩치도 컸다.

나는 남학생 중에서는 큰 편이었고 그녀는 여학생 중에서 가장 컸다.
자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굳었다.
맨 뒤에 그녀, 그 앞에 나.


수업 시간마다 등을 의식했다.
연필 끝이 뒷머리를 톡 건드리고 손가락이 옆구리를 찔렀다.
돌아보면 손바닥이 등을 치고 물러났다.

그녀는 배구부였다.

힘이 셌다.


쉬는 시간만 되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면 어깨가 먼저 굳었다.
돌아보면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책상에 팔을 괴고 있었다.


졸업식 날 그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단단하게 포장된 선물과 짧은 편지.

‘너를 좋아했어.’

글씨가 조금 기울어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손수건은 서랍 어딘가에 밀어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그녀가 쓴 사랑의 문장에는 거친 동사가 있었고 나는 그 끝에 매달린 목적어였다.


몇 년 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SNS에서 나를 찾았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 사람들로 붐비는 대학가. 카페 유리창에 비친 그녀가 예전보다 작아 보였다.
이제는 내가 더 컸다.

마주 앉아 그녀는 작정한 듯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나이에 했던 결혼, 배구를 그만둔 날, 아르바이트에서의 아픈 기억들.

그리고 말했다.

“나 그때 너 좋아했었는데.”

여전히 과거형이었다.

“내가 너 많이 괴롭혔잖아. 네가 싫어하는 거 알았어. 그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어.”


나는 좋아하면 말수가 더욱 줄어들었다.
괜히 거리를 두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야 마음을 확인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겼지만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끝내 설명할 수 없었다.


카페 창밖을 바라보며 의자에 등을 기대 보았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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