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화는 원래 피곤한 건가요

by 고양이

평소에 저는 사람 말을 그렇게 열심히 듣는 편은 아니에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듯 웃고 스무스하게 넘겨요.
일종의 저전력 모드로 살아가요.

그런데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 안의 모든 센서가 다 켜져요.


눈동자 초점이 자동으로 맞춰지고요.
목소리 높낮이를 분석해요.
표정의 아주 작은 떨림까지 감지해요.
단어 선택 알고리즘도 풀가동돼요.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저는 사람이기보다는 프리미엄 상담 챗봇에 가까워요.


문제는 그 상태가 두 시간을 못 넘겨요.

집에 오면 그대로 침대에 누워요.

눈을 감으면, 아까 그 사람의 표정이랑 말투랑 멈칫했던 0.3초가 하이라이트처럼 계속 재생돼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뜻하기보다는 텅 빈 느낌이에요.

배터리가 3%예요.
충전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잘 들어주는 것, 그 사람을 향해 온 마음을 여는 것,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니까 애쓰는 거고 애쓰니까 더 사랑하게 되는 거라고요.

잘 보이고 싶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혹시 제가 더 좋아하는 쪽일까 계산도 해봐요.

그런데 그건 편안함이 아니라 아주 미묘한 긴장이에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저는 항상 120% 버전으로 존재해요.

평소에는 하지 않던 농담을 조금 더 크게 하고요.
리액션도 조금 더 과해져요.
제 이야기는 조금 덜 꺼내고요.


그렇게 그 사람의 하루를 다 받아주고 나면 제 하루를 챙길 자리가 없어져요.

저는요, 60%만 꺼내 보여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를 원해요.
침묵이 흘러도 초조하지 않은 온도를 원해요.

사랑이란 배터리를 태워서 증명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충전기가 되어주는 일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요, 당신 앞에서는 120%가 아니라 100% 그대로이고 싶어요.
아니, 가끔은 70%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https://youtu.be/tX4rUDi_ER4?si=lOpSPhOdT0lcaTO7

이전 25화25. 사랑의 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