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엔 다른 의미로 설레요.
눈이 온다는 핑계로 어디를 가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꼭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괜히 세상이 내 편이 되어주는 느낌이 들어요.
눈이 오는 날은.
밀린 답장을 보내고, 할 일 목록을 거의 다 지웠다.
엉켜 있던 것들이 정리되니까 나까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일을 많이 해서인지 오늘은 뿌듯하네요.“
이상하게도 바로 반박이 안 나왔다. 맞는 말 같기도 했으니까.
늘 오늘 뭘 했는지로 하루를 설명하니까.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았는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렇게까지 뭔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
맛있는 밥 한 끼만으로 근사해지는 날이 있어요.
세탁을 마친 옷을 널어두면 바람이 지나가며 소매를 흔들어요. 그 장면을 멍하니 보고 있는 시간이 즐거워요.
식탁 위에 슬쩍 발을 올렸다가 내 눈을 마주하고 화들짝 놀라는 강아지, 그 짧은 순간 하나로 이미 충분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아무것도 대단하게 해내지 않았는데도 웃고,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