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른들은 왜 단 걸 싫어할까.’
이 질문은 깨진 달걀 다섯 개에서 시작됐다.
트렁크를 열었는데 달걀껍데기에 금이 가 있었다.
아, 인생 같아.
이동 중에 꼭 뭐 하나는 깨진다니까.
아마도 무거운 물건이 위에 넘어졌겠지.
계란도 마음도 대충 그런 식으로 금이 간다.
버리기엔 아깝고 프라이는 너무 밥반찬 같았다.
지금 내 기분은 ‘밥’이 아니라 ‘베이킹’이었다.
카스텔라가 떠올랐다.
폭신한 공기 같은 것, 오늘을 말아 올릴 수 있는 것.
정량의 설탕 대신 꿀을 넣었다.
요즘 세상이 너무 “설탕설탕” 하잖아.
달아야 잘 팔리고, 사랑받는 분위기.
그래서 나는 설렁설렁 꿀로만 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때까지 가는 거지. 묻고 더블로 가! 응?
냉동실을 뒤지다가 ‘쑥’이라고 적힌 푸른 가루통을 발견했다.
밀가루는 몸에 안 좋다니까 또 괜히 건강한 척해보기.
좋았어, 쑤욱 진행시켜.(제발 멈춰!)
쑥은 약간 으른 맛이다. 봄 들판과 할머니의 기억을 분쇄해 놓은 맛.
머랭을 열심히 올렸다.
머랭은 참 솔직하다.
공기를 넣으면 부풀고 대충 하면 축 처진다.
사람 관계도 충분히 휘저으면 폭신해질까.
오븐에서 쑥 미숫가루 향이 올라왔다.
초록빛 구름이 실내에 퍼지는 느낌.
깨진 달걀 다섯 개가 이렇게 변신하다니.
인생도 혹시 이런 식으로 복구 가능한 거 아닐까.
마침 어머니가 오셨다.
한 조각을 내밀었더니 한입 드시고 말했다.
“오, 달지 않아서 맛있네.”
으른들은 단 걸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굳이 달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도달한 걸까.
인생이 이미 충분히 달콤 쌉싸름해서 설탕을 더 붓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쓴맛도 삼킬 줄 알고 싱거움도 받아들이는 사람들.
돌아가시는 길에 한 아름 싸드렸다.
상자 안에서 아직 따뜻한 쑥 카스텔라가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게 괜히 마음 같았다.
(사실 내 입맛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먹는 게 좋다.
완벽한 레시피보다 즉흥적인 선택.
설탕 대신 꿀, 밀가루 대신 쑥.
깨졌으면 깨진 대로, 섞어서 다시 굽는 거.
아직은 단 걸 좋아하지만 언젠가 나도 말하겠지.
“달지 않아서 맛있네.”
그때쯤이면
나도 조금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