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각자 알아서

내 걱정 나만큼 하는 사람 없다

by 윤나다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시절을 미련 없이 실컷 앓았다. 그 시절을 통과한 지금에야 돌이켜보니 알겠다. 꽤 혼자 심각했고 궁상스러웠음을. 그 시절을 증명하는 몇 권의 노트도 있다. 그 노트에는 '뭐라도 진짜 될 줄 알았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던 타인의 문장과 영감을 받았다는 느낌에 흠뻑 취해 쓴 어수선한 글들이 시끌시끌하게 널려있다. 괜히 멋져 보이는 그림을 오려다가 붙이거나 전시 티켓, 인상 깊은 신문 기사를 찢어 클립으로 고정해두는 허세도 잊지 않았다. 당시 내 기준에 노트란 모서리가 볼품없이 해지는 것은 물론 제 모습을 영영 잃을 정도로 도톰해지고 낡아가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해 봄부터 회사에서 지급받은 투박한 노트를 쥐고 살았다. 그렇게나 열심히 끼고 살던 노트를 몇 계절은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결정적으로 무엇을 읽든간에 타인의 문장이 나를 너무나 쉽게 스쳐 가고 어떤 일에도 쉽게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나 또한 '어떤 시절' 하나를 빠져나왔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이상 취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단조로운 인생을 의미했다. 먹고사는 일은 노트와 머릿속에서 서성이던 자잘한 공상을 순조롭게 해치우는 것이었다. 소설가의 문장을 옮겨 적으려는 부지런함보다 인기 동영상 하나 더 보고 자려는 호기심이 앞질렀다. 노트든 블로그든 어딘가에 무엇이든 쓰고 싶어 안달 나던 마음은 퇴근 후 침대에 한번 드러누운 몸을 쉽게 일으킬 수 없었다. 블로그에 끄적이던 글의 간격이 며칠에서 몇 달로 늘어가고 살아가는 일을 감상할 새 없이 '뭐 해 먹고살지'가 자주 끼어들었다. 한때는 밤마다 곧잘 했던 일들, 군데군데 허름한 나를 채워준다고 자부했던 일들이 피로하게 느껴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는 모양이 달라진 내가 그 시절처럼 해진 노트만 끼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또 한 시절은 그냥 살았다. 일이나 하자, 사는 거 다 똑같다 같은 말이 입에서 자주 나왔다. 쉽사리 결괏값이 나오지 않는 단상을 접어두니 하루 중 가장 큰 고민은 점심 메뉴로 좁혀졌다.


하지만 단조롭게 산다는 일이 마음처럼 월급으로 대충 퉁치는 게 다일 수는 없어서 때때로 공허해지는 속을 달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날들이 찾아왔다. 그런 날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만 끝끝내 아니었던' 시절의 내가 써먹던 방법을 종종 가져다 썼다. 결국 내게 남은 건 그것들뿐이었다. 이제야 그 노트를 들여다보면 읽힌다. 그때 지독하게 파고들었던 게 사실 누구도 아닌 '나'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는 것을. 그러니 들여다보고 뜯어본 만큼 해진 나를 스스로 구할 '행복하게' 운용할 방법 몇 가지는 확실히 건져낼 수 있었다.


문장 필사를 넘어 작가의 텀블벅까지 제 발로 찾아가 그의 단상까지 수집했던 부지런함으로 유료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홀로 책을 음미하면 평화로웠고 여럿이 모여 감상을 나누면 책의 마무리가 층을 이루며 풍요로워졌다. 노트의 말미에 닿으면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좀 더 강하게'가 있다. 좀 더 강하게 원해도 괜찮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시를 내 손으로 써두고도 완전히 잊고 살았으니 책을 읽다 발견한 것처럼 새롭게 읽는다. 그러다 문득 찬 바람이 불어올 계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신춘문예를 떠올린다. 이런 식으로 한때 내가 나를 데리고 놀던 가락을 조금씩 변주하거나 확장하여 혼자 알아서 행복하게 노는 방법을 찾아갔다. 누구를 쉽게 원하지도 않고 무엇을 헛되이 쓰지 않고 혼자 알아서 그리하여 각자 알아서 행복하게 존재하는 방법들 말이다.


나의 SNS 중 하나는 오래전부터 '행복은 각자 알아서'가 내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블로그에도 불현듯 외칠 때가 있다. 세상에 내 걱정 나만큼 하는 사람 없으니 타인 앞에서는 적당히 울고 각자 알아서 행복하라고. 또 언젠가는 지금은 인연이 다한 친구 A에게 너랑 나랑 같이 잘 사는 방법은 각자 알아서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하기도 했었다. 섭섭하다는 반응이 먼저였던 A가 지금쯤 내 말을 완전히 이해했을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될 줄 알았지만 결국 '나'일 수밖에 없어서 알아서 행복하기로 결심한 나의 이야기를 오래된 노트에서 발췌하고 다시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살다가 보면 '아,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데' 또는 '결국 언젠가는 하게 될 텐데' 싶은 일이 뒷덜미에 꼬리표처럼 내내 따라다닌다. 이게 그 일이다. 그리고 지금 해야 잘 될 일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원래 대책 없이 좋은 예감이 든 날, 그날 바로 뭔가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