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은 언제 끝났던걸까?

그 모든 일들이 지난 일이 된다는 기쁨

by 윤나다







"아마도 그 여름의 절정이 지나갔다면 그 날 낮에 우리가 낮잠을 잘 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간 게 틀림 없었다. 그렇다면 내 청춘의 절정이 지나갔다면 그것 역시 아마도. 결국 <길 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7번 국도를 다녀온 뒤에도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여름은 지나갔다. 되돌아볼 때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지 않고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



나는 출판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본 일이 있다. 스물다섯이었고 대학교도 졸업한 상태였다.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당장 취업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딱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혼자 국내 여행을 다녔던 기록을 모아서 50여 곳이 넘는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다. 출판사 메일은 대부분 서점에서 수집했다. 당시 출판사 홈페이지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 취향과 맞는 곳을 찾겠다고 서점에서 여러 책을 뒤져가며 출판사를 추렸다. 샘플 원고와 기획안을 보냈다. 답이 없는 경우와 검토 끝에 출간이 어렵다는 메일이 몇 주에 한 번씩 피드백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또 보냈다.


계절 하나를 다 보냈을 즈음 드디어 한 출판사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대학로에서 만났다. 당시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은 내가, 이미 숱한 거절에 익숙해진 내가 절대로 안 열릴 것 같던 문 하나를 열고 '출판사와 미팅'을 한다는 것은 거대한 사건과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 후로 몇 번 출판사에서 직접 만나거나 외부에서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한 번 더 문을 열기란 어려웠다. 대단한 각오를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나 혼자 열심히 뜨겁기만 했던 도전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취업에 잠식되어 갔다. 샘플 원고를 만지는 시간보다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출판사 투고도 시간 날 때 한번씩 하는 일로 미뤄졌다. 이게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3일 밤도 새는 스물다섯이었으므로.


그리고 한 출판사와 몇 번의 미팅 끝에 계약하기로 했다. 집으로 <출판 계약서> 서류가 왔다. 차분하게 앉아서 꼼꼼히 읽어 보려고 했는데 글자가 또렷하게 잡히지 않았다. 내 도장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디 하나 실수할까 싶어 메모지에 행동 강령 수준으로 할 일을 적고 여러 번 읽으며 확인했다. 숱하게 떠돌았던 나의 샘플 원고는 담당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전체 원고를 만지는 단계로 넘어갔고 그사이 취업도 하게 됐다. 꽉 막혔던 내 인생, 이제야 풀리는구나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오랜만에 회사 근처에서 담당자와 만났다. 꽤 긴 시간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에는 남아있는 게 없다. 그저 내부 사정으로 출간이 어렵게 됐다는 결론만 선명했다. 그렇게 완전한 실패를 자초한 나의 도전이 끝이 났고 사정없이 들끓던 내 청춘의 온도도 드디어 식어갔다. 뜨거움이 식자 목 넘김이 편한 일들을 찾기 시작한 게 문제였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로 정리되는 이야기들 나도 좋아한다. 이러저러한 고비와 실패가 나를 끌어내렸지만 끝끝내 성공하여 멋진 결과물을 얻었다는 이야기 나도 신나게 쓰고 싶었다. 이 이야기의 엔딩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논현동 레스토랑에서 끝나지 않고 K문고에서 내 책의 표지를 만지며 울던 스물다섯의 나,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논현동 레스토랑이 엔딩이고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인생의 어떤 구간은 남들처럼 고속도로를 타고 끝까지 달리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렇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다. 신호마다 걸려 가며 국도를 돌다가 뒤늦게 겨우 고속도로에 올렸나 했지만 그마저도 반도 못 가 멈추게 되는 일도 많았다. 그게 내 인생의 고달픔이라는 걸 진작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처음 달리는 것처럼 상쾌하게 출발해야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렇다!


나는 아마도 '안 되는 일 끝까지 붙잡기 전문가'라든가 '나 혼자 알아서 고생하기 선수'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적당히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면 될 것을 끝까지 한답시고 붙잡다가 이 꼴이 나지 않았느냐 해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결국 역량 부족이었다는 말도 맞는 것이었고. 요즘이라면 그 기세로 독립 출판이라도 했을테지만 그때는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인생의 일들은 누구도 쉽게 엔딩을 고할 수 없게 누군가의 말처럼 점이 되어 연결되기도 했다. 그때 일을 계기로 한 웹진에 여행 에세이를 3년간 기고했고 결국 글을 쓰는 일로 먹고 살았다. 그때 일이 없었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저 좋아서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는 이 직업, 카피라이터도 내 인생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일을 했어도 어떻게든 먹고 살았겠지만 '행복하게' 먹고 살지는 않았으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혼자 떠났던 내 모든 여행은 아마 논현동 레스토랑 이후 몇 계절은 더 흐른 뒤에나 끝났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실패의 기억을 묻거나 혹은 묻지 않아도 내 지난 실패를 줄줄이 말하고 싶어 끙끙 앓았을 때까지도 나는 목적지를 잃은 여행 중이었으므로. 누군가에게 아니 스스로 어떤 일을 더는 '실패'로 언급하려 하지 않을 때, 살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 라고 농담처럼 말하게 될 때 비로소 그 모든 시끄러운 날들은 지난 일이 된다. 그러면 나는 더 가벼워질 수 있다. 한 구간 더 가볍게 달릴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이 가벼움을 향해 어느 국도를 돌고 돌아 또다시 달려온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