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뭐가 좋을까요?

어제 뭐 먹었더라?

by 윤나다



출근 후 내 자리에서 바라본 창밖의 날씨는 어쩐지 맑아 보여 오늘 점심은 기분 좋게 동네를 벗어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잔뜩 겁을 주던 태풍은 소멸했다는데 하늘의 모양새는 새 가을의 해를 내줄 듯 말듯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물기만 분사해대길래 내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물 한잔 하고 오는 길에 창을 열어 보니 날만 밝았을 뿐 굵어진 빗줄기에 우산 쓴 사람들의 행보만 가득했다. 아 이러면 또 귀찮아지는데.


회사 건물과 가까운 쌀국수 집으로 메뉴를 급하게 변경하고 조금 서둘러 걸었다. 이 비에 국물 생각이 간절해진 이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2인석 하나만 남아 있어라 하고 마지막 걸음으로 골목을 확 꺾는 순간, 통창을 가득 메꾼 이들은 벌써 그 따뜻한 면발을 후루룩 넘기고 있었다. 아..하는 탄식을 짧게 터트리며 고개를 돌리던 일행을 급하게 붙잡고 나는 또다시 제안을 했다. 그럼 고기는 어떻겠냐고.


점심시간에 다른 것도 아닌 퇴근 후의 행위처럼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은 조금 다른 맛이 있다. 한정된 점심시간을 어떻게서든 다채롭게 채우고자 메뉴를 고심하고 여러 레스토랑이나 뷔페를 가기도 하지만 고깃집에 가는 건 꽤나 고정된 점심 메뉴의 패턴을 깨는 경쾌함과 소소한 일탈의 기분까지 덤으로 주는 장소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휴학하고 회사 생활이란 걸 처음 하게 됐을 때 내가 있던 팀은 점심시간에 당시 이름을 날리던 패밀리 레스토랑, 샐러드 뷔페 등을 자주 찾았는데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라도 시간을 꽉 채워 먹고 오는 날이면 묘하게 기분이 신선했다. 뭘까. 주인집 근처만 돌돌 돌며 김치찌개나 김밥을 먹던 노예들이 블럭 하나를 벗어나면 그만큼 더 멀어지는 맛에 기분이 좋았던 건 아닐까.


하여튼 오늘은 수제버거를 지나 쌀국수를 놓치고 생갈비가 최종 목적지가 되는 날이었다. 이 집의 주력인 생갈비 2인분을 주문하고 세팅을 기다렸다. 시원하게 접어둔 폴딩 도어로 바깥의 모든 것들이 노출되어 비 냄새마저 걸러지지 않고 들어온다. 툭툭 떨어지는 비를 멍한 눈으로 보다가 달궈진 숯 위로 자리 잡은 생갈비 덩어리 3개를 보니 갑자기 가슴이 뛰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 이런 날엔 지글지글 고기였어,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오늘의 정답을 잘 찾은 기분이 들었다.


기본 반찬과 된장 찌개, 계란찜까지 마무리되는 동안 고기는 얼추 익게 되고 스타트를 끊으라고 재촉한다. 각자의 접시에 명이나물, 무쌈, 파채 등을 덜어두고 쾌속의 젓가락질을 시작한다. 나는 무조건 양념 없는 고기의 첫입은 오로지 소금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의인데 숱한 젓가락질에 각종 양념으로 무감해지기 전에 순수한 입맛을 끌어 올려두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끝에 소금 톡톡. 아..이 맛이지.


같은 패턴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인지하면 매일 아침 손에 쥐는 커피 한 잔에도 오늘치 행복의 정량은 충분하다는 것을 바로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이따금 지루함에 비명을 지를 때도 있겠지만 비틀어진 일상의 틈새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그것들을 수습하기 위해 시간을 온전히 쏟아내야 한다면 가장 간절해지는 것이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커피 한잔을 하던 내 모습일테니. 그래서 어느 날엔가 우리는 일상을 완전히 비틀어버리는 것보다 접근성이 꽤나 좋은 선택지를 쉽게 갈아 끼우면서 다른 모양의 행복을 빠르게 흡수하는 쪽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고정된 출퇴근의 긴 트랙을 끊임없이 돌면서 잠깐 다른 행선지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점심시간에 잠겨있다. 이 행복을 악착같이 끌어 올리기 위해 출근할 때부터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어제 먹은 메뉴를 상기한다. 사실 어제 뭐 먹었는지도 생각이 바로 안날만큼 가뭇한 날을 살아가지만 반드시 어제와 겹치지 않는 메뉴, 진짜 맛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음식을 오늘은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메뉴를 이 트랙을 도는 동안에는 결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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