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취향해요

아 맞아요! 그 영화!

by 윤나다




나 또한 취향을 전시하고 싶어서 앓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읽는 책, 좋아하는 영화, 저장해두고 다니는 시, 잘 몰라도 그냥 좋은 그림 같은 것들을 내걸어두고 앞으로 나를 이렇게 읽어주세요, 라고 은근하게 말하고 싶어 끓어오르던 날들이 가득했다. 철 지난 잡지에서 발견한 인터뷰, EBS 일요시네마에서 반만 봤지만 좋아하게 된 영화, 친구 차에서 알게 된 재즈 같은 것들. 취향의 촉수를 건드리는 모든 걸 모조리 흡수할 수 있었던 시절의 나는 건수가 잡히는 날이면 앉은 자리에서 글 하나를 쓸 수 있을 만큼 감수성과 체력이 짱짱했다. 흡수할 수 있는 힘을 기반으로 예민하게 굴면 취향은 날을 갖게 되고 세세해진다. 취향의 힘은 조금 더 세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의 과거사까지도 추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스물을 넘기던 계절에 소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을 읽고 전경린 작가의 날들을 찾는 데 에너지를 쓴다든가 기형도의 시를 따라 쓰다가 기형도 20주기 문집 소식에 바로 달려 나가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내가 될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온전히 내 취향이라기보다 '내 눈에 멋져 보이는 것들을 열심히 좋아하는 나'에 흠뻑 취해 반쯤 눈감고 주정을 부리던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뭐 어떤가. 그때는 생계와 완벽하게 무관한 일에 자주 매달리며 내 취향에 더 가까운 쪽으로 흘러가는 일이 사사로운 연애 놀이보다 아름다웠고 짜릿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문득 무슨 영화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그런 질문을 밥 먹다가 뜬금없이 던져도 무난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 수다를 떨고 싶다. 그럼 나는 너무 반가워서 바로 눈을 맞추며 비포 시리즈라고 말하고 3편 중 하나라도 봤는지 물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물을 것이다. 몇 번째 보게 되는 영화가 있느냐고. 그 영화는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설령 호기심으로 시작한 대화의 끝단이 아 그렇구나,로 심심하게 엔딩을 맞이해도 좋으니 오늘은 생계와 저만큼 거리를 둔 질문들로 시간을 나고 싶었다. 30년 전 영화로 시작해 요즘 제철 과일로 대화가 이어지거나 올림픽 공원으로 시작해 융의 페르소나로 홀라당 빠져버리는 대화들. 나는 그런 대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셈할 수 없는 정보를 물어가며 흘러가는 대화는 생활에 실용성 하나 갖다주지 못하겠지. 내일이면 휘발되고 나는 다시 웹소설을 쓰면 돈을 얼마큼 번다느니 퇴사하고 차린 그 베이글 가게에 웨이팅이 얼마나 길다는 둥의 얘기에 휩쓸리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간절하게 그런 대화를 하고 싶었다. 끝도 없이 무용하고 아름다운 취향 위에서 목적지 없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골목 끝까지 다 걸었는데 다시 돌아 더 걷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난 일요일 밤에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불현듯 한석규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얀 이불에 파묻은 말간 얼굴로 시작하는 영화는 초봄에 있는 나를 몇 장의 달력을 넘겨 여름 한 가운데로 데려간다.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사는 모양에 따라 사로잡히는 장면도 달라지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나는 또 수다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예전에 그냥 지나쳤던 장면을 오늘은 잠시 멈춰두고 보고 싶다고. 저 대사를 다시 보라고. 옛날처럼 홀딱 반해버린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말랑한 감상에 젖어 서둘러 몇 줄 남기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것들에 취해 있다라고 전시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이제는 그냥 대화로 흘려버리고 싶다. 사로잡힌 장면과 몇 마디의 대사 앞에서, 실속 없는 대화도 가능한 사람 옆에서. 취향을 무난하게 받아주는 사람은 귀하니까. 너무 많은 질문, 뭐 먹고 살지가 일상을 어지럽게 한다. 그래서 그 사이를 비집고 취향을 살피는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있다면 나는 너무 반가워서 당장 손부터 잡고 싶어질지 모른다. 내일 나랑 처음으로 인사하는 사람한테 대뜸 물어볼까. 요즘 좋아하는 단어가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