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그냥 응원하고 싶은 사람

너의 모든 날들을 향해 아낌없이 아낌없이

by 윤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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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쯤 된 일이려나. 그때는 블로그를 봤다. 한 게 아니라 본 게 맞다 싶은 정도로 우연히 들어간 누군가의 블로그를 곧잘 들여다보곤 했다. 그 사람은 차를 자주 끓여 마시고 한번에 외우기 어려운 이름의 외국 작가 책을 읽고 인상적인 구절은 멋들어진 사진과 함께 남겨두었다. 마음이 동하면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찾았다. 생각보다 재밌지도 않고 내 취향도 아닐 것을 알지만 이 또한 결국 '읽다 만 책'이 될지언정 이미 나는 매료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 모든 문장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인스타그램이 판을 치고 있지만 타인의 취향을 남몰래 쇼핑하는 일은 이미 오래된 역사였다. 어느 날에는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모로코에서 근황을 알리고 불현듯 익숙한 찻잔 사진과 함께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자신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응원했다. 세상 사람들은 단단한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인듯 자랑하지만 부서진 모습 그대로 실패를 고백하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당신의 시간은 말랑하게 잘 이어져 나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다 어느 날 그 블로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점차 방문하는 일이 줄어들기도 했고 즐겨찾기만 해둔 탓도 있고 당시 쓰던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모든 기록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지나간 추억과 사람이 그렇듯이 블로그도 어떤 시절에 완전히 잠겨버린 것이다. 그래도 이따금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정말 문득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에 글을 남겨둘 수는 없지만 그 사람 덕분에 알게 된 노래를 들으며 응원했다. 그때의 취향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아니라면 아닌 대로 궁금하고 어쩌면 너무나 '생활적'인 것들이 취향 따위 거칠게 잡아먹고 있다고 고요하게 화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직접적인 연은 없어도 그냥 문득 생각나면 응원해주고 싶은 사람 몇몇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출근하자마자 가방부터 던져두고 아이스 라떼를 사러 나오는데 메시지가 들어왔다. J, 오랜만에 뜬 이름에 웃음부터 났다. J는 '출근하는데 그냥 생각나서' 연락했다며 3년 전 마지막 톡처럼 밝게 안부부터 물었다. 아마도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바로 운전대까지 잡게 된 J는 백수로 놀고 있던 나를 찾아 우리 집 앞으로 자주 왔었다. "파주 헤이리 마을이 뜨고 있대!" 하면서 아침부터 찾아와 나를 태우거나 "요즘 토다이가 인기 많잖아!" 하면서 반차를 내는 날이면 우리 집으로 퇴근을 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내게 만년필을 처음 선물해 준 것도 J였다.


내 처지에 조금이라도 움츠러들 틈도 주지 않고 달려와 활기를 주는 데 부지런했던 친구, 손해를 보든 말든 매사에 솔직하게 대응하고 감정도 숨김없이 드러나서 모든 표정이 사랑스러웠던 친구를 많이 좋아했고 응원했다. 뒤늦게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됐지. 제아무리 그때 젊었다고한들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며 챙기는 일이 쉬운가. 내가 그 마음들을 다 받았었구나 싶어 어느 날에는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당시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측정할 수 없어도 그냥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던 시절에 최선을 다했던 것만은 분명했기에. 한 시절이 소리도 없이 우리 사이를 지나가고 각자의 생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이사 소식이 들렸고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서로 알고 있어도 쉽게 만나자고 할 수 없을 만큼 먹고 사는 일은 빠르게 빠르게 어딘가로 우리를 밀어냈다. 그냥 이렇게 각자 살고 있어도 문득 응원하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 중 하나가 J였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안부를 나누고 있자니 어찌나 좋던지. 맞아 너랑 얘기하면 이런 기분이었지. 나는 네 생각이 나도 그냥 잘 살고 있겠거니 하면서 건너뛰고 말았는데 이렇게 3년의 침묵을 깨는 걸 보니 역시 J 너라며 고맙다고 했다.


아이스 라떼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문득 나는 지금 누구를 응원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사심 없이 누군가를 응원하게 될 때 마음에 스며드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결코 '나는 나를 응원한다'는 것만으로는 찾아오지 않는 그 에너지는 오직 누군가를 향해 줄 때만 가능해진다. 모든 힘을 줄 때만 가능하다. 언젠가 내가 사람 일로 괴로워할 때 "줘, 그냥 줘, 다 줘! 그러면 돼!" 라고 내 귀에 대고 외치던 사람이 있었다.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에게 연락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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