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지각으로 9시 넘어 출근하는 아침.
아스팔트에 투명하게 내리쬐는 봄빛을 바라보며 오래 다녀 익숙한 길을 운전하여 간다.
차의 라디오에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소나타 G단조를 디제이가 소개하고 있다.
몇 분 전 병원에서 채혈을 마치고 나왔다.
지난 1월 방문했던 내과 의사 선생님은 3월 초에 혈액검사를 받으라 하셨다.
내 나이만큼 여러 번 해본 일이라 긴장할 것도 없지만,
오늘 채혈을 앞두고,
삶은 시금치를 듬뿍 넣은 비빔밥을 어제 금식 전 마지막 식사로 만들어 먹었다.
시금치에 도리질하던 딸은 기어이 따로 카레를 만들어 먹으며 내 양푼을 보고는
"비빔밥 이 아니라 비빔시금치네"하였다
디저트니 빵이니 맥주니 그동안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어왔으니 별 효과는 없겠지만,
나로선 채혈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를 얻어보고자 나름 건강식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식사 후엔 바로 일어나 한 시간 넘게 씩씩거리며 둘레길을 걷고 왔다.
역시 어림도 없지만 채혈에 좋은 영향을 끼쳐 건강한 수치가 나오길 바라는 사행심 가득한 운동이었다.
딸은
"피검사 앞두고 벼락치기가 대단허네"
하며 웃었다. 맞는 말이니 나도 따라 웃었다.
디제이의 설명이 끝나자 라흐마니노프 첼로소나타 G단조, 안단테가 흘러나온다.
시작을 여는 건 피아노다. 생동하기보단 느리게 말문을 여는 초봄 같은 선율이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나는 1학년 담임만 내리 4년을 하였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무경쟁의 1학년을 자의 반 타의 반 맡아왔었다.
일 학년을 계속 맡아줬으면 하는 교감선생님의 눈길을 과감히 외면하고 올해는 2학년 담임이 되었다. 내년 학교이동을 앞두고 남은 일 년은 다른 학년을 가르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원하던 새 학년을 맡게 된 지금,
내 기대와는 다르게 바뀌어버린 학교사정으로
'그냥 하던 대로 일 학년을 계속 맡을 걸.' 욕심에 불과한 뒤늦은 후회를 한다.
작년에 가르쳤거나 복도에서 눈에 익은 아이들이 우리 반이 되었지만,
새로운 학년, 새로운 교실, 새로운 교육과정, 새로운 업무, 새로운 동학년 선생님들은 역시나 반가운 한편으로 낯설다.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고 익숙했던 1학년과 비교해 보며 이 모든 것이 올 한 해 내게 잘 맞는 옷이 될지 또 내가 이 새 옷에 나를 잘 맞춰갈 수 있을지, 아직은 불편하고 어색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거울에 요모조모 비춰보며 옷깃을 세워보고 소매를 잡아당겨보고 바지를 추슬러 옷매무새를 다듬어보는 중이다.
학교는 일 년 주기로 리셋되어, 매년 새롭게 맞이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 앞에 나는 항상 초보가 된다. 경우의 차이는 있지만 교직경력이 늘어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나잇값 못하게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피아노에 이어 첼로가 다정하고 묵직한 선율로 화답한다.
피아노라는 봄빛이 살짝 건드려주자 첼로라는 새싹이 수줍어하며 조용히 고개를 내미는 듯하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듯 노래한다.
두 악기의 대화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저 멀리 도로 한가운데 작고 시커먼 뭔가가 나의 상념을 깨웠다.
"어머낫"
차에 치인 고양이 시체였다.
화들짝 놀라 급히 차선을 바꿨다.
'어디를 가려고 여기까지 나왔던 거니?'
참혹하여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외쳤다.
자꾸자꾸 관세음보살을 되뇌면,
오욕을 당한 듯 차바퀴에 으깨진 고양이가 극락왕생한다는 듯이.
내가 선택해 놓고 이리저리 안락을 저울질하는 나의 이기심이 수그러들기라도 한다는 듯이.
서로를 어루만지듯 대화하던 피아노와 첼로 선율이 스르르 잠이 들듯 끝을 맺어가고 있다.
울컥,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첼로소나타에 스민 우수가
고양이시체의 참담함이
새 학년도의 긴장이 이 경력에도 여전히 버거운 게 한심한데,
음악은 또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나나보다.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눈물을 집어넣었다.
쌀쌀한 공기 속에 번져가는 봄의 온기같이,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라흐마니노프 첼로소나타 G단조, 3악장 안단테
아직은 서먹한 2026학년도 나의 새 학기도
피아노와 첼로가 서로 대화하며 스며드는 이 소나타처럼
아이들과 내가,
새로운 업무와 내가,
새로운 동학년과 내가,
고개 내민 새순을 어루만지는
따사로운 봄의 손길이 되어 서로를 부드럽게 품어갈 수 있을까.
라흐마니노프 첼로소나타가 충분히 그러할 수 있으리라고 다독여 주는 것 같은 느지막한 출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