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 -
우리 선생님은 화를 내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말한다.
"그런 것 같아? 고마워" 빙그레 웃지만
나는 곧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 복잡한 마음이 되어,
'나도 오래 걸렸어. 그리고 여전히 어려운 일이야' 고해하듯 속으로 애매하게 웃는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교사로서, 가족구성원으로서, 생활인으로서 '화'가 날 때가 있고(아니 많고),
좁쌀만 한 것에 오히려 더 화가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화가 나기도 하며,
여전히 '화'를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풀다가 쓰라린 후회에 사로잡힐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아마도, 내가 화내는 모습을 못 봐서, 내가 표정에 몸짓에 말투에 분노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잘 감추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
어쨌거나 우리 선생님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앞에서는 화를 내지 말자고 다짐한 것이 적어도 겉으로는 지켜지고 있는 거니까.
<화가 호로록 풀리는 책>은 2학년 통합교과서 '화가 잔뜩 났어요' 차시 후속수업으로 읽어준 책이다. 교과서에는 이 책의 그림과 내용이 부분적으로만 인용되어 있어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책 전문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화'를 잘 조절하고 풀어내는 것은 어른인 나에게도 영원한 숙제와 같은 것이므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나도 같이 배우고 싶었다.
아이들은 '화'의 모습이
비바람, 천둥, 번개,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 깨진 하트, 유령의 얼굴을 한 불덩이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렇게,
치켜뜬 눈, 커진 콧구멍, 앙다문 입술, 꽉 쥔 주먹을 한 채 온몸이 불덩어리 같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 아이가 여기에 있다.
화가 꼭대기까지 엄청 치솟은 이 아이는 '펑펑'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아서, '퐈야' 용처럼 불을 뿜어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싶다.
그림책은 모든 걸 활활 태워 부숴버리기 전에 화난 마음을 이렇게 풀어보라 권한다.
'어흥' 사자처럼 으르렁대거나 크게 소리를 질러보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써 보고
발을 쾅쾅 굴러보거나 말처럼 달려보거나,
발로 '뻥'차는 것도 좋다고.
빵 터질 때까지 풍선을 불거나
'좔좔', '엉엉' 수도꼭지처럼 울어보라고 한다.
화를 꾹 담아두지 말고 발산해 보라고 말한다. 물론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또,
1부터 100까지 세고, 친한 친구에게 말하거나 편지 쓰거나,
그냥 혼자 있고 싶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비밀공간을 찾거나 상상해 보고,
무조건 네 편인 사람에게 아무 말 않고 안겨 보고, 곰인형이나 매일 덮는 이불을 꼭 안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을 듣거나 몸을 흔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안 가득 넣다 보면,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내가 왜 화가 낫었지?' 하는 순간이 오고.
어느새 아이스크림 녹듯 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린아이들은 '화'라는 감정 자체를 나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린이고 어른이고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으며, 이때 느끼는 이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화를 느끼는 자신을 자책하며 그 감정을 끌어안고 있거나, 가족이나 친구, 주변사람들에게 화를 냄으로써 그것을 풀게 되면 서로가 모두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기에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지 않는 건강한 방법으로 '화' 다루고 풀어가야 할 것이다. 설령 이것이 잘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와 태도 자체가 행복을 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리거나 때리거나 화낼 때'
처럼 자신의 존엄이 훼손당하고 무시당할 때 화가 난다고 하였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그러할 것이다.
화를 푸는 방법으로는
'휴대폰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카톡을 한다'가 제일 많다. 미디어세대답게 자신이 좋아하는 미디어를 이용하여 화를 푼다. 과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여러 대답들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혼자 있으면 화가 풀려요' 하는 것이다.
'구석에 앉아 있으면 화가 풀린다'며 활동지 저 구석에 조그맣게 자신을 그려놓은 청록이의 그림을 본다. 경직된 몸, 추켜올린 눈썹의 청록이는 구석에 앉아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화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화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화를 지혜롭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화를 푸는 방법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배웠으면 좋겠다. 일찍 알면 알수록 아이들이 화를 푸는 자기만의 건강한 방법을 더 많이 시도하고 찾아낼 수 있고, 어느 날 자연스레 몸에 밴 그것으로 화를 호로록 풀어 자신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뒤에야 '화'가 주는 고(苦)에 대해 들여다보았고, 여전히 그 앎과 화를 잘 풀어내는 실천 사이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시소를 타는 나보다 더 빨리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아가면 좋겠다.
우리 반 아이들과 '화'로 이야기 나누며 그림책 수업을 한지 며칠 뒤,
전문강사가 와서 지도하는 <회복적 생활 교육> 시간이 되었다. 나에 대해 알아보고 서로를 이해해 보는 시간이다.
강사가 아이들에게 질문하였다.
"화가 나는 것이 나쁜 걸까요?"
옳거니! 얼마 전 공부한 내용이다. 어떤 훌륭한 대답이 나올까?
"............."
조용하다. 나서기 좋아하는 다홍이도 조개처럼 아무 말이 없다.
강사가 다시 묻는다.
"화가 나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침묵만이 가득하다.
질문이 좀 어려운가? 살짝 어이가 없다.
제자들아! 담임의 절절했던 강의를 벌써 잊었느뇨?
역시 '화'는 만만찮은 주제인가 보다.
나의 생각을 바꾸기로 한다.
당연한 거 아냐?
너도 화를 들여다 보기까지 오래 걸렸고, 화를 잘 풀어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고 투덜대잖니!
9살이 금방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거지.
잘 모르는 것도 아주아주 당연한 거지.
'그렇지 얘들아?'
아이들이 '네' 하며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