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 줄 알았는데
너희들이 왔구나

오늘도 유쾌한 할머니 선생님 3

by 버들아씨
향기롭고 따뜻해서
봄이 온 줄 알았는데
네가 온 거였구나!

글배우 님의 글귀가 써진 현수막을 칠판에 붙이며 입학식 준비를 모두 마쳤다.


1학년 선생님의 2월은 바쁘다.

하필 겨울방학 석면공사가 끝난 직후의 어수선함 속에서 교실까지 바꿔야 했다. 사용하던 물건들을 새로운 교실로 옮기며 내가 맥시멀리스트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였다. '해가 갈수록 물건도 같이 늘어나니 몇 년 지나면 짐을 머리에 이고 살겠군' 스스로에게 투덜댔다. 아이들 사물함에 늘어 붙은 스티커를 떼고, 책상 위 낙서를 힘주어 지웠다. 교실바닥을 비로 쓸고 대걸레로 닦으며 1년을 살아갈 새 교실을 청소하였다.


나는 1학년 담임이자 학년부장이다.

교실을 청소하고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와중에 곧 있을 입학식 준비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학년의 대표로서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 입학식 준비에 앞장서고, 잘 진행되고 있는지 수시로 살피고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 4년을 합해 1학년 담임 7년 차가 되어가니, 입학식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져 그나마 다행이다.

1학년은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들이, 학교를 즐겁고 괜찮은 곳으로 여기며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 줘야 한다.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학년이다.

우리 학교는 20대와 30대 선생님들의 비율이 높다. 매년 신규교사가 따끈따끈한 발령장을 들고 오는 학교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나이와 경력이 있으니 '노련하리라 생각된다'는 이유로, 1학년은 4년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차지가 되었다. 게다가 학년부장 겸 업무부장까지 맡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내가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하면서

라는 말처럼 나이만 먹은 채, 바람과는 달리 수시로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나를 느낀다. 그간의 경험치로 어떤 상황에 대해 예견하고 그에 대한 대비와 처리를 하는 자세가 조금, 아주 조금 의연한 듯 보일 뿐. 노련한 게 아니라 다만 노오력할 뿐인 것이다.


우리 학교 입학식은 강당과 각 교실 두 군데서 이루어진다. 강당에서 전체 입학식을 한 후 배정받은 반으로 이동한다. 교실로 아이들과 학부모가 오기 때문에 강당과 별도로 교실에서 준비할 것들이 만만찮다.

- 학급명단과 연락처등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 목걸이 명찰을 만들고, 책상이름표 준비하여 붙이기

- 입학축하와 환영을 담은 교실환경 꾸미기

- 1학년 학부모들 대상 학교와 학급생활 오리엔테이션 자료 만들기

- 입학선물 준비하기

- 각 종 안내장, 신청서 등을 모아 배부할 준비하기

- 입학 첫 주 수업 준비 등등. 이외에도 꼼꼼히 확인하고 준비할 게 많다.

학년부장으로서 나는 준비하는 틈틈이 회의에도 참석하고, 겸임한 업무처리도 한다. 또 여러 문의사항에 대한 답을 하고 새 학년도 교육과정운영과 관련한 의견을 모으고 결정도 하였다.

이렇게 휴대폰 한 번 들여다볼 틈이 없었던 입학식준비를 모두 끝냈다.


이제는 입학식에 설 나를 준비할 차례다.

시업식과 입학식이 있는 새 학년 첫 시작일, 선생님들은 단정하고 멋진 옷을 힘주어 입고 출근한다.

학부모들도 함께하는 입학식이기에 나는 더 특별히 신경 써 입을 옷을 고른다.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우리 반 친구들, 우리 선생님'이 세 가지는 입학생과 학부모들의 최고 관심사이자 물음표이다.

먼저 '우리 학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주지별로 정해진 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이름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다. 가족과 함께 미리 학교를 둘러보기도 한다.

다음, '우리 반 친구들', 아이들은 집 근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같이 다닌 경우가 많다. 대체로 얼굴들을 알고 있기에 친구들끼리 그리 낯설어하지는 않는다. 물론 새로 이사오거나, 수줍은 아이들의 경우는 예외다.

하지만 '우리 선생님'은 안내장에 소개된 이름정도만 알뿐 잘 모를 터이다.

그래서 설렘 반 두려움 반일 아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예쁜 선생님으로, 학부모에게는 아이를 맡겨도 좋을 믿음직한 선생님으로 만들어줄 그 옷을 신경 써 고르는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는 기본 장착이다.


옷장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 옷, 저 옷을 조합해 본다.

베이지색 재킷을 걸칠까. 아냐 이건 너무 점잖다. 초록색 카디건을 입을까. 아냐 좀 추워 보인다.

검정원피스에 연분홍재킷을 입을까. 그래 이거야, 뭐니 뭐니 해도 봄에는 핑크지!


겉모습은 준비했으니 이제 속마음을 준비할 차례다.

나도 우리 반 아이들이 매우 궁금하다. 만남을 앞두고 몹시 설렌다. 명찰에 이름을 끼우고, 책상에 이름표를 붙이며 이름에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정채봉 님의 시처럼 기쁨과 감사함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첫날의 떨림과 영롱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랑과 다정함으로 아이들을 대하도록 하자.


시 <첫 마음>이 꼭 내 마음이다.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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