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예보가 있는 날

by 버들아씨

눈 예보에 남편은 새벽 3시 집을 나섰다. 공무원들은 눈 예보, 폭우 예보가 있으면 비상이 걸려 전원 출근이다.


어느 해 아주 적은 눈으로 시(市) 교통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하는 일이 생겼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것밖에 못하느냐, 뭐 하는 것이냐, 놀고 있냐 등등의 온갖 민원과 지탄을 받은 이후로, 소량의 눈 예보라도 있으면 즉시 비상근무 명령이 발동된다.


공무원을 남편으로 둔 나는, 눈이 와서 설렌다거나 비 오니 시원하고 좋네 운운하는 게 눈치 보인다. 언젠가 "눈 오니까 너무 좋아!" 했다가 "눈 오면 지 남편 고생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하는 남편의 원망 섞인 목소리에 말을 멈추었다.

그 후로 ‘와! 눈 온다’, ‘비 온다!’ 하는 탄성은 속마음으로만 한다. 그리고는 "남편, 너무 수고가 많네. 왜 눈은 자주 와서 우리 남편 고생시키는 거야? 이렇게 잠도 못 자고 힘든데" 보란 듯이 목소리와 표정에 안쓰러움을 가득 담아 말을 건넨다. 세상에 남편 걱정하는 사람은 이 마누라밖에 없다는 듯이.

그러면 남편은 어느새 헌신과 봉사심으로 무장하여 "공무원은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거야" 한다.

어디 가겠나! 국가와 사회의 공복(公僕)으로 혼연일체 사명감이 투철한 남편이다.


때론 요령도 좀 피울 줄 알면 좋으련만,

한 번은 지방으로 아버님을 뵈러 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눈 예보가 있으니 비상근무를 해야 할지 모른다며 일정을 취소하였다.

나는 "아직 비상근무가 떨어지지도 않았잖아. 그냥 가도 될 것 같은데? 가서 진짜로 비상근무 명령이 떨어지면 지방에 있어 당장은 못 간다고 말하면 되지 않아?" 하였다.

남편의 대답,

"그러면 짤려!"


사십 대 중반에 대기업을 퇴직한 남편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계약직으로 복지관에서 일하였다. 그러다가 운전직 공무원에 도전하여 합격하더니 지금까지 천직인 양 근무 중이다.

운전직이니 만큼 이렇게 눈 예보가 있는 날이면, 또 눈이 내리고 있으면 제설차를 끌고 도로를 누빈다.


밤새 염화칼슘을 뿌려 녹여 둔 그 길을 공무원 마누라인 나도, 우리 이웃들도, 시민들도 안전하게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것일 터이다.


눈 예보가 있는 저녁이면, 남편은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찌감치 잠을 청한다.

나는 일찍 일어나 눈 속으로 나가고 싶어 설레이며 뒤척인다.


남편이 비장한 사명감으로 출근한 아침,

눈 쌓인 아침의 서정과 감성을 어쩌지 못해 밖으로 나간다. 울룩불룩 패딩에 두터운 목도리, 털모자, 털장갑으로 무장한다. 주머니엔 천 원짜리 한 장, 동전 세 개를 잊지 않는다. 하얗게 눈 쌓인 길을 걸어가 노란 불빛 따사로운 편의점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살 참이다. 손난로 삼아 커피를 감싸 쥐고 강아지처럼 동네의 눈 쌓인 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산책로를 조심조심 디뎌 걷는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이 길은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어야 한다.


나는 남편이 간간히 휴식도 취하며, 시간 되면 식사도 든든하게 하며, 피로에 지치지 않게 일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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