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VINO and KINO

영화, 와인에 취하다.

#5 전우치, 2009

by john C

한국 영화에도 수많은 와인들이 등장하지만 유독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과 염정아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박신양의 칠레 와인에 대한 장광설로 유쾌하게 시작되며, 영화 '타짜'에서 고니는 정마담이 준 그 유명한, 샤토 무통 로칠드 한 잔을 받아 마시고 이내 뱉어 버린다.


이 정도면 최동훈 감독님의 와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긴 어렵지 않지만 사실 그보다 와인을 사랑하는 분은 그의 와이프이자, 최동훈 감독님의 첫 번째 천만 영화 '도둑들'의 프로듀서인 안수현 pd님이다.


아마도 그의 영화들에 와인이 많이 등장하는 까닭은 안수현 pd님 덕(?)이 클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성탄절 특수를 겨냥해 전작 타짜와 비슷한 600만 관객수를 기록했다.

영화 전우치는 한국의 고전소설 전우치전을 바탕으로 최동훈 감독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500년 동안 족자에 갇혀 있다 현실세계로 풀려난 전우치의 활극을 그린 영화이다.


MCU 등 외국산 히어로들이 판을 치고 있는 극장가에 나타난 오리지널 한국 히어로(?)의 등장에 반가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기한 대로 전우치역의 강동원이 신선들의 도움으로 500년 만에 탈출한 변한 세상에 놀라는 장면 중, 광고판 속의 와인 병을 꺼내어 한 모금 마시곤 이내 병을 던져버리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나온 와인이 바로 샤또 도작이라는 프랑스 보르도 마고 지역의 그랑크뤼급 와인이다.

개나리색 라벨이 눈에 띈다.


노란색 레이블이 눈에 띄는 샤또 도작은 1855년 그랑크리 클라쎄 5등급을 부여받았다.


마고지역의 오래된 와이너리들의 와인처럼 캬베르네 소비뇽이 69%, 메를로가 31% 블렌딩 된 와인으로, 달콤한 바닐라향이 지배적이며, 첫 모금에서는 잘 숙성된 검붉은 과실의 향미와 오래된 오크통의 풍미가 느껴진다. 애프터는 연필 깎을 때 나는 흑연과 삼나무의 향이 어우러져 느껴진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발랄한 이미지의 자태

전체적으로 화려하진 않아도 부르고뉴 피노누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키한 느낌으로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다만 야리야리한 바디감이 조금은 아쉬울 수 있을만하다.


적당한 산미와 타닌감이 스테이크 등의 육류에 최적이겠지만 스튜 같은 걸쭉한 국물요리, 특히 감자탕과의 조합이 굉장히 좋았다.


보르도 와인 특유의 감칠맛이 식사의 소화를 돕고 리듬감을 준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병이 비워지는 걸 보면 맛있는 와인임에 틀림없다.


전우치는 이렇게 잘 만든 프랑스의 와인을 마시고 뱉어내고 와인 병을 집어던졌을까?


족자에 500년을 갇혀있었다고 하니 역으로 추산해보면 그는 조선시대 중종 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에 조선 사람들은 청주와 막걸리를 주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와인은 집어던졌지만 맥주는 마신다.


처음으로 기록된 조선시대의 와인에 대한 이야기는 1630년 네덜란드 상인이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면서 제주도 관찰사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제일 처음이다. 당연히 와인을 접해보지 않은 전우치 입장에서는 난생처음 느끼는 톡 쏘는 듯한 산미와 떱떠름한 타닌감이 마치 사약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와인은 우열이나 순위를 가리기 힘든 기호식품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비노 점수라든지 와인 챌린지 같은 대회가 끊임없이 열리는 이유는 분명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난 생 처음 마셔보는 와인이 샤또 도작이라면 그 섬세하고 촘촘한 향미에 온전히 취하긴 어렵다. 입에 대는 순간부터 황홀한 와인도 분명 있지만 몇 번이고 음미할수록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와인, 특히 프랑스 마고지역 와인의 특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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