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을 입다.

#6 리플리(앤서니 밍겔라, 1999)

by john C

패션은 피상적이다.


패션은 전적으로 외부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더럽게 의식하며, 비교적 소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패션을 이용한다. 그렇기에 나의 패션은 나만의 것은 아닌 것이다. 패션은 결국 개인적이 취향과 사회적인 요구의 합인 것이다.


다운로드 (3).jpg 시대별 여성 패션 트렌드의 변화


장장 7년에 걸친 2차 대전이 끝난 40년대 말 글로벌한 평화의 무드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현대 패션은 역사는 비로소 태동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전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몸을 가리기 위한 옷 비슷한 것을 이용했지만 그건 추위나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자신의 취향을 뽐내거나 대중적인 흐름에 대한 발맞춤은 아니었다. 중세에도 외관을 꾸미기 위한 의복은 있었지만 신분, 성별, 인종 등을 구분 짓는 잣대로 이용되었고 꾸미기의 기능은 소수의 상류층에게만 허용되는 수준이었다.

1900년대 들어 미래주의나 파시즘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현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개념적인 시도이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그러진 하나의 전체주의적 정책일 뿐이었다.


자코모미래주의정장.jpg 20세기초 자코모 발라의 미래주의 정장의 디자인


이렇듯 패션은 어느 정도의 대중성과 보편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의제이다. 즉, 패션은 경향이다.


리플리포스터.jpg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3명의 주인공들을 내세운 영화 포스터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리플리(1999)는 종전 이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미국의 1950년대가 배경으로 비행기의 발명으로 부유층 또는 그 자제들이 한창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이른바 '제트족'의 등장이 글로벌한 이슈로 떠오르던 시대였다. 그 들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오전에 프랑스로 스키 타러 가고 오후엔 이탈리아 남부로 파티를 즐기러 다녔다.


톰과디키.jpg 이탈리안 날라리 디키와 미국 범생이 패션의 톰


피아노 조율사로, 그리고 호텔의 벨보이로 살고 있는 톰 리플리(맷데이먼 분)는 어느 날 동료 피아니스트의 부재로 선박부호인 그린리프의 파티에서 피아노를 치게 된다. 변변한 파티 의상이 없던 톰은 프린스턴 대학의 재킷을 입고 갔다가 그린리프의 눈에 띄게 된다. 톰을 프린스턴 학생으로 착각한 그린리프는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돈만 펑펑 쓰고 놀고 있는 아들 디키(주드로 분)를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그 대가는 톰이 상상한 이상이었다. 톰은 이탈리아로 날아가 여자친구인 마지 셔우드(기네스 펠트로 분)와 주야장천 놀기만 하는 디키를 만나 프린스턴 대학 출신인 첫 행세를 하며 그와 가까워지려고 한다. 톰은 그린리프 씨의 부탁(?)대로 그를 설득하여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하지만 오히려 디키는 아버지의 돈을 더 받아내어 같이 놀자고 꼬드긴다. 톰은 그들과 어울리며 마치 자신도 상류층의 일원인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이내 톰에게 싫증이 난 디키는 톰과의 작별을 고하지만 그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놓치기 싫은 톰은 급기야 디키를 죽이고 디키인 척 살아간다.


태양의가득히.jpg 알랭 드롱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태양은 가득히(르네 클레망, 1960)


영화 캐럴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이미 1960년 알랭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다. 또한 자기 망상적인 현상을 일컫는 리플리증후군 역시 이 소설의 제목에서 따왔다.


넷플리플리.jpg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서늘한 내면 연기로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올드머니룩'으로 불리는 50년대의 미국 상류층의 패션과 패션 종주국으로의 발돋움하게 되는 이탈리아의 패션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2000년 아카데미의 의상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시대적인 배경과 캐릭터의 성향을 한껏 표현해 준 의상들을 담당한 앤 로스는 수많은 브로드웨이 연극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의상이라 평가받는 전설적인 의상 디자이너로, 이미 앤서니 밍겔라 감독과 함께했던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앤 로스의 영화 속 의상들은 서사가 묻어 있다. 완벽한 아름다움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디테일을 잘 표현해 의상으로 그 캐릭터의 깊이감을 더해준다.


다운로드 (2).jpg 톰과 디키의 즐거웠던 한 때


주인공이 톰의 의상은 전형적인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임을 증명하는 아이비룩, 또는 프레피룩으로 극 중반까지 한두 개의 아이템이 고집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아 그 캐릭터의 고집스러움 혹은 상류층을 향한 집념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디키를 살해한 이후는 병적으로 디키의 의상을 복붙 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애쓰는 패알못의 모습도 보여주기는 한다.


상대역인 디키는 자유와 여유로움의 상징과도 같은 리조트룩, 이른바 휴양지 패션으로 그 방탕함과 부유함을 표한다. 특히 큰 칼라가 돋보이는 여유로운 핏의 감색 슈트는 입은 주드로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할만하다. 실제로 원작자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많은 씨네필들은 톰이 디키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았나 하는 해석을 하곤 한다. 그만큼 이 영화의 주드로의 패션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더욱이 현재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롤업 한 치노팬츠와 양말은 신지 않는 로퍼 차림은 그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지.jpg 사랑스러운 리조트룩의 마지 셔우드(기네스 펠트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는 주드로의 여자친구로 나온 마지 셔우드이다. 이미 수많은 디자이너의 뮤즈가 된 기네스 펠트로의 착장은 디키라는 캐릭터가 가진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움을 더욱더 끌어올린다. 하이웨이스트 비키니에 배꼽쯤에서 아무렇게나 묶은 하얀 셔츠는 당대 가장 힙한 휴양지 패션이었을 것이다.


마지셔우드.jpg 국내에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 마지셔우드에서 영감을 얻은 브랜드 마지셔우드가 있다.


원작에는 없으나 영화에서는 극 중 드라마틱한 상황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인 메러디스 로그(케이트 블란쳇 분)는 50년대의 단색의 코트와 스카프, 숄 등으로 다소 정적이지만 화려함을 잃지 않은 영국의 상류층의 무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진주목걸이나 벨벳머리띠 등으로 한층 세련된 사랑스러움을 표현한다.


리플리케이트.jpg 고혹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케이트 블란쳇의 패션


캐롤.jpg 케이트 블란쳇은 원작자 퍼트리샤의 골수팬으로 원작에 없는 역할을 만들어 출연했을 정도이다. 결국 또 다른 퍼트리샤의 원작을 영화화한 캐롤에 제작과 주연을 맡았다.


그의 외모만으로 디키로 착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는 디키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위장을 고수하기 위해 그는 또 다른 살인을 저지리게 되고 영화는 그 이후 또 계속되는 사건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디키톰.jpg 매일 똑같은 코르덴마이를 집어던지고 실크피케셔츠에 치노팬츠를 입은 톰, 이 장면 이후 톰은 디키가 되기로 한다.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기품 있는 패션들로 눈을 즐겁게 한 영화 속의 패션 역시 한없이 피상적이기만 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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