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을 입다.

#8 트루로맨스(True Romance, 1993)

by john C

이제와 이실직고하지만 패션에 대해 아무런 식견이 없었던 내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2025년 현시점 대한민국 유통가에 가장 뜨거운 감자인 빈티지 패션 때문이다. 빈티지 역시 패션으로 접했다기보다는 다가오는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보잘것없는 개인으로 그나마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수많은 옷들이 만들어지고 그대로 버려져 환경오염에 큰 이유가 된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패스트패션 등에서 나오는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려지는 옷들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며 이대로 가다간 2050년엔 25%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도 속옷과 양말을 제외하고는 새것의 의류를 구입하지 않고 있다.


패스트 패션은 더욱더 빨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예전엔 이태원이나 남대문 골목을 뒤져야만 겨우 찾아볼 수 있었던 빈티지샵들이 이제는 굳이 중심 상권이 아니라도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으며, 유명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도 연이어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등 그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 가는 걸 보면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빈티지 의류를 수입하는 비바무역은 신세계와 콜래보 하여 전 지점에서 팝업을 개최했다.


빈티지 또는 레트로 즉, 복고는 패션에 있어서 어제, 오늘의 키워드는 아니다. 패션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현대 패션이 태동한 시기 이후 주기적으로 복고 패션에 대한 공급과 수요를 반복했다.


이러한 흐름은 아메카지룩, 올드머니룩 등 패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이른바 '뉴트로'라는 새로운 문화의 장르를 구축하며 '신복고'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프코어의 선두 주자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실제로 동묘 아재(?)들의 빈티지 패션의 영감을 받았다.


이러한 빈티지 열풍에 많은 패피들과 브랜드에서는 옛날 영화나 드라마, 광고와 잡지를 텍스트 삼아 아이템을 복각하거나 재창조하는 등의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복고 열풍을 몰고 온 티브이시리즈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우들과 그 당시 패션


그중 토니 스콧 감독의 1993년작 영화 트루 로맨스에는 당대 톱스타와 새롭게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들이 총 출연한 작품답게 시대를 대표하고 각 캐릭터의 딱 맞는 다채로운 패션들을 선보이고 있다.


돌아가신 토니 스콧 감독의 최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생일날 싸구려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던 비디오가게 점원인 클레어런스 월리는 일하는 비디오대여점 사장이 보내준 콜걸 앨라배마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단순간 둘은 운명적인 사랑임을 깨닫는다. 클래런스는 앨라배마를 고용한 포주 드랙슬을 죽이고 앨라배마의 짐가방을 들고 나온다. 짐가방인 줄 알았던 가방 속엔 드랙슬의 마약이 가득했고 둘은 이 마약을 팔 결심을 한다.


칼라가 큰 셔츠에 체크무늬 블레이져는 시대를 꿰뚫는 패션의 정수이다.


진짜 비디오가게 점원 생활을 했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각본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당시 굉장한 인기를 구가했었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패트리샤 아퀘트를 주연으로 이미 연기의 정점을 찍은 크리스토퍼 월큰, 데니스 하퍼는 물론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던 발 킬머, 브래드 피트, 제임스 갠돌피니, 크리스 펜, 톰 시즈모어 그리고 사무엘 잭슨과 게리올드먼까지 이제는 마땅히 최정상의 배우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지금 보면 정말 믿을 수 없는 캐스팅이다.


지금 보면 너무나 놀라운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 속에 주인공을 제외하고 이 수많은 배우들이 컷을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의상과 아이템으로 캐릭터의 셜명을 대신하는 등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장치로 패션을 이용한다.


하와이안 셔츠와 비비드 한 클래비지룩 톱, 잠자리 선글라스로 커플룩 완성


특히 주인공인 클레어런스와 앨라배마의 빈티지 패션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과감한 비비디 컬러에 클리비지룩의 앨라배마와 청바지에 밀리터리 야상을 더한 클래어런스의 패션은 팔딱거리는 청춘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퍼코트나 하와이안 셔츠,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등으로 톡톡 튀는 개성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자신이 흑인이라 믿는 백인 연기가 일품이었던 게리 올드먼


'자신이 흑인인 줄 아는 백인처럼 연기하라'는 감독의 디렉션을 받은 게리 올드먼 역시 쟁쟁한 그의 필모에 당당히 이 영화를 선두에 놓을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었으며, 히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브래드피트의 그런지한 모습은 잠깐의 등장에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 외 분장에만 8시간이 걸렸다던 발 킬머의 패션 역시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리운 아이스맨 발 킬머, R.I.P(사진은 영화 탑건 중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오르락내리락 쾌속 질주의 스토리 전개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씬은 작중 클래어런스의 아버지로 나오는 클리포드(데니스 하퍼분)와 시칠리아 마피아인 빈센초 코코티의 심문 장면이다. 마피아를 상대로 사선의 경계에서 장황한 '시칠리아 흑인설'을 설파하던 데니스 하퍼와, 점잖게 응수하다 끝내 살인을 저지르는 크리스토퍼 월켄의 씬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긴장감 넘치는 씬 중 하나이다.


착장부터 이미 시칠리아 마피아인 크리스토퍼 월켄, 슈트가 멋스럽다 못해 고압적이다.


명장면을 만들어 준 데니스 하퍼, 죽음의 순간에도 아들을 위해 유머를 잃지 않았던.


당시에도 컬트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이 영화는 2020년 LA기반의 스트릿웨어 브랜드 '플레져스'에서 콜래보 한 의류를 선보이며 그 인기를 다시 구가할 수 있었다. 2015년 알렉스 제임스가 설립한 플레져스는 대담하고 직설적인 펑크 등의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은 브랜드로 많은 브랜드, 디자이너는 물론 트루로맨스 같은 작품과도 콜래보를 진행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이다.


영화 트루로맨스의 명장면이나 등장인물을 프린트한 콜래보를 선보였다.


패션 말고도 영화 트루로맨스를 이야기할 땐 빼놓을 수 없는 건 한스 짐머의 음악이다. 영화 내내 잔잔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울려 퍼지는 오리지널 스코어인 'You're so cool'은 정은임의 영화음악 시그널로 쓰일 만큼 인기를 모았다.


너무나 이쁜 패트리샤 아퀘트의 마지막 장면


또한 주인공들이 여행을 떠날 때 쓰인 1976년형 보라색 캐딜락 역시 주연 못지않은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 모델명은 엘도라도 컨버터블 미국에서 만든 자동차 중 가장 큰 전륜구동 자동차로 당시 도로 위에 매트리스 라 불릴 만큼 거대하고 안락한 자동차였다. 배기량에 비해 낮은 출력, 낮은 연비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이 차는 한 때 앨비스의 차로도 유명하였다.


연보라색 1976년형 캐딜락 엘도라도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침대였다.


이처럼 많은 볼거리와 매력이 듬뿍 담긴 이 사랑스러운 영화는, 단연코 이 영화로 인해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인생 영화 중 올타임 넘버원으로 꼽고 있는 작품이다.


남자는 항상 여자의 첫사랑이 되길 원한다. 반면 여자는 미묘한 본능이 있어 그들이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길 원한다. (영화 트루로맨스 중에서)


스키니진과 와이드 팬츠, 워크셔츠와 청청패션이 공존하는 탈개성의 시대에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의 패션을 즐길 수 있음이 너무도 반가운 시대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이 영화처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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