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제5원소(The Fifth Element, 1997)
80~9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는 화려한 색채와 인공적인 조명을 이용해 시각적인 연출에 초점을 맞춘 영화 사조인 시네마 뒤 룩(Cinéma du look) 운동이 있었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레오카락스, 장자크베네, 그리고 뤽 배송이 있다.
이 감독님들은 확실히 영화의 내용보다는 스타일을, 서사보다는 화려함을 강조하면서 시각적인 쾌감을 극대화하랬다는 평을 이룬다. 특히 레오 카락스 감독의 경우 시대를 풍미했던 팝문화를 영화 속으로 가져옴으로써 딩시의 관객으로 하여금 비영화적인 실재를 경험하게 이르렀다.
이러한 영화 사조는 70년대 이후 티브이 등의 대중매체의 보급으로 인해 티브이 속의 광고나 뮤직비디오의 빠르고 강렬한 이미지를 영화 속에 차용하려고 함이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누벨 이마주, 네오 바로크라고도 불렸던 시네마 뒤 룩 운동은 시각적인 연출뿐 아니라 청각을 넘어 오각을 자극하는 매체로써의 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그랑블루로 시네마 뒤 룩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던 뤽 배송 감독은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레옹'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그가 레옹의 성공을 등에 업고 도전한 작품은 2259년의 미래가 배경인 영화 '제5원소'이다.
우주에서 지구로 향해 돌진하는 미지의 괴물체로 인해 위협을 받는 23세기의 뉴욕. 인류를 구원한 제4원소를 가진 몬도샤인들은 몰살을 당하고 만다. 몬도샤인의 유전자로 인해 만들어진 인류의 최후의 보루가 된 릴루(밀라 요보비치 분)는 우연히 탑승한 택시의 기사인 코벤(브루스 윌리스 분)을 만나 이 난관을 헤쳐나가게 된다.
비교적 최근에 다시 봤음에도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는 영화 중 하나이지만 20세기에 그린 23세기 즈음의 미래는 한없이 정신없고 화려하며 전복적이다.
전작 레옹에서도 마틸다의 아이코닉한 패션으로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나탈리 포트만을 일약 스타로 만든 릭 배송은 이 영화에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인 장폴고티에와 손을 잡고 더욱더 미친듯한 비주얼 쇼크를 보여준다.
특히 당시 옷이 가진 경계란 경계는 모두 허문듯한 주인공 릴루의 이른바 붕대의상은 지금 봐도 난해하고 괴랄하며 전위적이다.
이 외에도 장폴고티에의 대담한 도전은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헤어스타일로 당시 만연한 젠더이슈의 아이러니함과 다중적인 캐릭터를 표하기도 했으며, 가수 루비(크리스 터커 분)에게 여성의 의상을 입히는 등 의상의 경계는 물론 젠더의 경계까지 뛰어넘는 시각적인 충격을 주었다.
보디라인의 앞, 뒤, 옆이 찢어진 얇은 고무 의상의 외계인 디바 콘서트 장면은 그 패션과 이미지는 물론 배우의 연기와 노래가 소름 끼칠 정도로 훌륭했다.
패션을 독학으로 익힌 고티에는 성인이 된 후 피에르 가르댕에서 일하면서 배운 패션 지식을 밑천 삼아 1976년 회사를 설립하고 줄곧 오트쿠튀르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패션계의 악동임을 자처하는 그는 기발함을 넘은 혁신을 통해 현대 패션의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예를 들어 2020년 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었던 삭스러너의 시초는 80년대 런웨이에 설 모델의 신발을 살 돈이 없어 양말에 밑창을 대고 구멍을 뚫어 힐을 나오게 만든 고티에의 디자인이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고티에는 후에 회상하길, '돈이 없어 자유로웠으며, 그렇기에 그 많은 창의력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라고 구술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패션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다. 아니 인생이 그렇다.
하지만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랑이다.
문명의 발전은 시각을 넘어 오각이 만족할 만큼의 쾌감을 가져다주겠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그 대상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는 원소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