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13)
패션에 관한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중 위대한 개츠비는 시대적인 배경이 되는 1920년대의 미국, 이른바 '재즈시대(Jazz age)'의 패션을 디테일하게 표현해 낸 작품이다.
물론 그의 전작인 '로미오와 줄리엣(Romeo+Juliet, 1996)과 물랭루즈(Moulin Rouge, 2001) 역시 화려하고 환상적인 의상들과 바즈 루어만 감독의 독특한 색채 감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에서 패션은 주인공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콘텐츠이며 장치이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랄드의 원작소설로도 유명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8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미술상과 의상상을 거머쥔 작품이다. 이미 네 차례의 영화화, 한 번의 티브이시리즈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는 올해로써 발간된 지 101년이 된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캐리멀리건, 토비 맥과이어의 찰떡같은 캐스팅과 울부짖는 1920년대(Roring 20's)의 미국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는 의상과 미술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전작에 이어, 바즈 루어만 감독의 아내인 캐서린 마틴이 의상을 담당하였으며 그녀가 이 영화를 위해 선택한 브랜드는 여성복은 프라다, 남성복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근본인 브룩스브라더스이다. 마틴은 영화 속 등장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수백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두 브랜드와 함께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되, 현대적인 감각을 첨가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20년대의 패션을 선보인다.
1913년 이태리 가죽 브랜드로 출발한 프라다는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사업을 이어가기 시작한 이후로 사업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1984년 그 유명한 나일론을 이용한 가방과 의류를 제작, 판매하면서 지금과 같은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992년 젊은 소비자층을 위한 세컨드 브랜드 격인 '미우미우'를 론칭하였고, 현재는 질샌더, 크리스천 디올, 캘리빈클라인에 몸 담았던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와 함께 공동으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산업을 위해 프라다는 리나일론이라는 재생 나일론을 개발하여 접목시킴과 동시에 나일론이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이어감으로써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818년, 헨리 샌즈 브룩스에 의해 설립된 브룩스브라더스는 미국 최초의 기성복 브랜드이다. 2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아메리칸 클래식의 근본을 보여주고 있는 브랜드로 아이비리그 스타일, 프레피룩 등 미국 동부 명문가의 전통적인 패션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존 에프 케네디 등 유수의 명사들이 즐겨 입었을뿐더러 미군복을 생산할 만큼 미국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브랜드이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진 미국의 뉴욕, 주식 및 채권 시장의 활황에 돈을 벌어보려는 작가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 분)는 신흥 부자들이 모여산 다는 웨스트에그지역에 월세 80달러짜리 허름한 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건너편 이스트에그에는 친척인 데이지 뷰캐넌(캐리 멀리건 분)이 남편인 폴로 선수 출신의 톰 뷰캐넌(조엘 에저튼 분)이 살고 있다. 톰의 초대에 파티에 참석한 닉은 개츠비라는 의문의 백만장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가 자신의 옆 집에 산다는 것 알게 된다.
베일에 싸인 개츠비가 궁금하던 차 개츠비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게 된다. 파티에 간 닉은 개츠비가 매일 같이 성대한 파티를 개최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촌이자 톰의 아내가 된 데이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전 헤어진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도. 닉은 데이지와 개츠비를 만나게 해 주고 둘은 은밀한 사랑을 이어가다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톰의 권유로 시내의 호텔로 닉과 개츠비, 데이지와 톰, 그리고 데이지의 친구이자 골프선수인 조던 베이커(엘리자베스 데비키 분)와 함께 가게 된다. 톰은 개츠비가 약국사업을 위장한 밀주업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데이지를 회유하려 하고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진정한 사랑을 갈구함과 동시에 이혼을 요구한다. 화와 슬픔에 못 이겨 뛰쳐나온 이들은 다시 집으로 향하게 되고 술에 취한 데이지가 운전하던 개츠비의 차로 동네 정비공의 아내 머틀을 죽게 만든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고를 숨기려 하고, 톰은 정비공 윌슨에게 아내를 친 범인은 개츠비라고 말한다. 격분한 윌슨은 총을 챙겨 개츠비의 저택으로 향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다고 불리는 1920년대의 미국은 영화에서 표현하듯 파티가 일상인 환락의 천국이었다. 여전했던 금주령은 오히려 '스픽이지(Speak Easy)'라는 형태의 음성적인 술집을 양산했으며, 뉴올리언스에서 불어온 재즈 음악과 찰스톤 댄스는 마약처럼 파티고어들을 더욱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전쟁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그들의 자녀들은 골프나 폴로 등 스포츠를 재미 삼아 직업으로 삼았을 뿐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의복이나 장신구 등 부를 과시하려는 목적의 꾸미기는 극에 달했다.
월스트리트의 호황으로 사무직이 많아진 시대이기에 전근대적인 여성관에서 벗어난 소위 '커리어우먼'이 생겨났고, 패션 역시 그 흐름에 발맞춰 자유분방함과 독립성을 강조한 가르손느룩과 플래퍼룩이 유행하였다.
프랑스어 가르송(소년 혹은 남자를 뜻함)의 여성격은 붙인 가르손느룩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신여성의 탄생을 뜻했다. 보브스타일이나 단발머리와 같은 짧은 헤어스타일과 코르셋을 탈피한 직선적인 스타일의 옷들이 유행하였다.
새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을 뜻하는 영단어에서 따온 플래퍼룩 역시 구습에서 탈피한 여성 해방운동이 불러온 스타일이었다.
황금의 시대였고, 재즈의 시대였으며 무엇보다도 여성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시기였다.
의상 담당인 캐서린 마틴과 미우치아 프라다는 영화 속 의상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들의 느낌을 한껏 살리는 미우미우의 정갈하고 심플한 드레스와 언더웨어와 유사한 의상들, 딱 떨어지는 실크로 만든 의상들로 표현했다. 특히 극 중 데이지가 입었던 일명 샹들리에 드레스는 프라다의 아카이브 컬렉션에 선택된 것으로, 프린지에 골드컬러 스팽글, 진주, 크리스털 스톤, 골드 메탈 등을 장식해 마치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한 연출로 데이지의 호화스러운 캐릭터를 더욱 잘 표현하였다. 풍요의 시대답게 목걸이, 반지 등의 반짝이는 액세서리는 티파니의 것을 사용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남자들의 의상 역시 시대에 맞게 리넨슈트, 레가타 재킷, 줄무늬 넥타이 등 브룩스 브라더스의 아메리칸 클래식에 대한 철학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남성복 역시 풍요의 시대에 맞게 그간의 무채색 계열의 복장에서 탈피한 가볍고 화사한 느낌의 컬러가 눈에 띈다. 특히 어두운 과거와 비밀을 숨긴 캐릭터인 개츠비의 핑크색 슈트는 그의 캐릭터를 보다 명징하게 만든다.
화려했던 시절은 10년도 채 못 간 채로 미국은 대공황을 맞게 되고, 3년간 미국은 총 88%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날려버린다.
피츠제랄드 역시 작가로 흥하기 이전 가난하다는 이유로 오랜 연인과 혼인하지 못하고, 작가로 성공한 이후 다른 여성과 결혼했지만 전 연인을 잊지 못했다. 소설 속 개츠비처럼 매일 같이 파티와 술 등 향락을 즐기며 살았으며 실제로 뉴욕사교계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었다고 한다. 그 역시 온갖 향락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아내마저 병에 걸리는 등 순탄치 못한 말년을 맞이했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일련의 사건들이 소설 속 개츠비의 인생과 닿아있다.
제목의 '위대한'이 붙은 이유에 대해 긍금했다.
조롱 혹은 풍자라는 의견이 대다수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위한 개츠비의 진실함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두가지의 의미로 받아 드릴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위대함은 경제적인 성공, 돋보이는 외모, 화려한 말솜씨, 민첩한 운동 신경 등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희미한 녹색 불빛을 잡으려 내민 손처럼 총탄에 스러져갈지라도 꿋꿋한 야망이 위대해 보이기도 하다.
조문객 하나 없는 쓸쓸한 개츠비의 장례식은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함과 동시에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의 인간을 표현한다. 죽음 이전의 인생, 곧 삶 자체가 위대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