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을 입다.

#13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by john C


짐자무시감독은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로 2025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박찬욱 감독님의 <어쩔수가없다>를 제치고 ㅠ

얼마 전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Father Mother Sister Brother, 2025)>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짐자무시 감독의 2013년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Only Lovers Left Alive)>는 전작인 <커피와 담배(Coffee & Cigaretes, 2006)>처럼 다소 느리게 움직이는 영화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국내 포스터


독특한 그만의 연출 스타일 덕에 도파민이 폭발하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스펙터클을 가진 영화들에 길들여진 이 들이 보기에는 지루한 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짐자무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며 나오는 오브제나 상징 등을 발견하며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게 볼 수 있다.


뱀파이어 분장이 따로 필요 없었던(?) 영화 속 두 배우의 모습


수세기동안 커플로 살아온 두 뱀파이어 '아담(톰히들스턴 분)'과 '이브(틸타스윈튼 분)'는 현재 지구 반대편에서 낮엔 자고 밤에 활동하며, 각자 서로의 삶을 살면서 지내고 있다. 아담은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 이름 없는 뮤지션으로, 이브는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또 다른 뱀파이어인 말로우의 도움을 받으며 은신하며 작가로 살고 있다.


이브는 스승이자 오랜 친구인 말로우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아담은 인간을 좀비라 칭하며 경멸하지만, 이브는 포용적인 마인드로 공존을 택한 편이다. 어느 날 이브는 동생인 에바의 꿈을 꾸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담을 찾는다. 아담 역시 에바의 꿈을 꾸었고 에바는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다. 가장 신성하고 신선하며 유일한 그들의 양식인 RH-O혈액을 나눠마시며 그들은 나름대로의 회포를 풀던 중 에바가 아담의 좀비 아니 인간 친구인 이안을 마셔버린다.


이브의 동생 에바는 오랜만에 나타나서 또 사고를 치고 만다.


그들은 에바를 내쫓고, 이안의 시체를 처리한다. 말로우를 만나러 지구 반바퀴를 돌아 탕헤르를 도착했을 때 오염된 혈액을 마셔 심신이 쇠약해진 말로우는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순수혈액 한 병을 건네고 이내 숨을 거둔다. 혈액을 구하길이 끊긴 그들은 아사하기 직전 커다란 결심을 하게 된다.


좌측부터 영화 <설국열차>, <나니아 연대기>, <콘스탄틴> 속에 틸다 스윈튼


2014년 개봉한 이 영화를 이제야 꺼내어보게 된 건 순전히 극 중 이브 역할로 나온 틸다 스윈튼이라는 배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오래된 세 가문 중 하나인 스윈튼 집안 출신으로 학교 동창이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인 그녀는 우리에겐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옥자로 친숙하다. 180cm에 가까운 키에 창백한 피부, 황금빛헤어, 회색과 녹색이 감도는 눈동자, 길쭉길쭉한 팔과 다리를 가진 그녀는 다소 판타지스러운 외모덕에 나니아연대기, 콘스탄틴 등에서 마녀나 천사와 같은 역을 주로 맡았다.


영화 <뮬란>의 의상디자이너이었던 독일의 패션디자이너 비나 다이겔러가 의상을 담당하였다.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영화 속에서 보이는 틸다 스윈튼의 모습은 예사로운 '옷걸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필모를 천착하게 돼 되었고, 이상하게 긴 제목덕에 건너뛰었던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의 삶에 백해무익할 수도 있는 커피와 담배라는 두 기호품을 그토록 매력적이게 스크린에 담았던 감독이기에 짐자무시표 뱀파이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영화 <뮬란(Mulan, 2020)>을 통해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도 올랐던 비나 다이겔러가 이 영화 속 몇백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들의 의상을 담당하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수세기동안 뱀파이어게 의상은 제2의 피부와 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하며 의상을 제작하고 연출하였다고 한다.


고혹스러우면서 퇴폐적인 황금색 자수가 돋보이는 로브를 걸친 영화 속 틸다 스윈튼


영화는 엘피판이 돌아가는 장면이 두 주인공이 각자 누워 자는 모습으로 치환되면서 시작한다. 이브는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에 귀족들이 입었을 법한 느낌의 퇴폐적이라 할 만큼 화려한 로브를, 아담은 그런지하고 히피스러운 가운을 입고 있다. 이브는 인간과의 공존을 택하고 나름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긴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반면에 아담은 인간과 동떨어져 이방인의 마인드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이브에 비해 한없이 수수한 고풍스러운 스트라이프의 그런지한 가운을 걸친 톰 히들스턴


그들이 만나서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클럽에 가는 장면에도 역시 이브는 회백색의 스키니진과 가죽재킷, 핏빛과 같은 버건디색의 실크 블라우스로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면모를 과시하지만, 아담은 위아래, 신발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통일한 고딕에 가까운 고어룩을 연출한다.


마치 블랙과 화이트, 음과 양처럼 양립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느낌으로 둘 사이를 나타낸다. 설정상 벌써 3번의 결혼식을 치른 이들은 이러한 '서로 다름'을 이유로, 혹은 핑계로 현재는 따로 기거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주야장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이 둘의 패션과 맞물러 모로코 탕헤르의 이국적인 모습과, 디트로이트의 황폐함이 교차되며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마치 뱀파이어의 유혹당하는 것처럼 시공간의 경계가 이내 무너진다. 그도 그럴 것이 뱀파이어가 주인공이다 보니 낮장면은 없을뿐더러 실내 촬영이라도 불빛이 희미한 어둠에 가까운 곳들 뿐이다. 그나마 가득 채우는 것은 짐자머시 감독이 속한 밴드 스퀄의 오리지널 사운드 스코어들이다. 류트를 비롯한 고전적인 악기 소리에 신스베이스 등 현대적인 사운드를 가미해 보다 독특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한다.


이브의 스승 격으로 나오는 말로우가 원래 셰익스피어였다든지, 아담이 작곡한 곡을 슈베르트가 훔쳐갔다던지, 온갖 악평에 시달린 그 시절 다윈을 위로한다던지 하는 자칫 헛웃음이 나올법한 개그요소를 진정성 있게 표현함으로 영화를 보는 깨알재미를 더 한다.


제목처럼 우리는 수많은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사랑의 중요함을 배운다. 사랑이야말로 안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존재가치이며, 최고의 산물이다. 영화는 비인간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 가치를 증명한다.


인간의 삶은 영원하지 않지만 인간이 입고 있는 옷은 거의 영구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옷을 입고 있는 주체가 없다면 그 옷은 단지 피상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랑 역시 서로가 없으면 그저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자.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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