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을 입다.

#14 그녀(Her, 2013)

by john C

최근 가사노동용 AI로봇이 곧 출시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누구나 느끼듯이 현재 AI 기술은 그 발전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찌감치 많은 감독들은 AI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로는 기대와 환희에 찬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중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 Her, 2013)>는 AI와 인간의 사랑을 소재로 인간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수작이다.


붉은색의 웜톤 셔츠가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아름다운 손글씨닷컴'이라는 편지대필회사에서 대필작가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테오도어(호아킨피닉스 분)는 이혼을 앞둔 싱글로 퇴근 후 매칭앱을 통해 상대와 시답잖은 야한 농담이나 음담패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년 남자이다. 제삼자의 연애나 우정 등은 화려한 미사여구를 잔뜩 담은 대필편지로 승승장구하지만 정작 본인은 결혼에 실패한 상황이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새로 출시된 인공지능 프로그램 'OS1'을 사게 된다. 'OS1'은 이른바 반려 AI로 외로운 현대인에게 친구나 비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이다. 가뜩이나 이혼을 앞둔 상황에 외로움이 사무친 주인공 테오도어는 프로그램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와 급속도로 친밀감을 느끼며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


프로그램의 설치 화면 색과 셔츠의 색이 같다.


<존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 2000)>과 <어댑테이션(Adaptation, 2002)>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 온 스파이크 존즈감독은 이 영화로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을 만큼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전개와 연출로 미래에 다가올 AI시대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며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뿌연 하늘에 고층빌딩숲으로 삭막한 미래를 설정하였다.


이 영화의 배경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로스앤절레스이다. 영화 중간중간 상하이에서 촬영한 미세먼지 가득한 날씨의 고층빌딩숲 장면이 꽤 여러 차례 나오는 걸로 미루어보아 더욱더 거대해진 미래의 사회 속에 부속품처럼 일하는 인간상을 그리는 듯하다. 약간은 암울한듯한 분위기에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옷차림은 흔히 미래를 그린 영화에 나오는 것들과는 다르게 밝고 유쾌하다. 또한 보통의 미래가 배경인 영화에서는 기본적인 의상 이외에 메탈릭 한 점프수트라든지 샤이닝 한 고글이나 헬멧, 건틀릿, 과장된 부츠 등의 새롭고 이상한 것(?)을 부착함으로써 '이게 바로 미래다.'라고 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넥타이라든지 모자, 벨트, 셔츠의 칼라 등을 덜어냄으로 간결한 또 다른 미래 같지 않은 미래의 패션을 그려냈다.


영화의 의상을 담당한 케이시 스톰은 스파이크 존즈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모든 영화에 스타일링을 담당하였다.


영화 속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 등 중 특히 남성의 바지는 밑위가 극단적으로 길게 늘어진 '하이웨이스트 스타일'은 1930년대 유행했던 모습에서 형태만 조금 더 모던하고 심플하게 다듬었다. 이처럼 디테일이 거의 제거된 미니멀한 의상을 제작한 의상 디자이너는 스파이크 존즈의 오랜 친구인 케이시 스톰이 맡았다. 아역배우를 시작으로 현재는 유명한 광고 감독인 그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옷을 굉장히 좋아했었다고 한다. 친구인 스파이크 존즈감독의 권유로 그의 영화 <존말코비치 되기>의 스타일링을 시작하면서 존즈 감독의 모든 작품에 관여하였다.


칼라가 작은 붉은 계열의 셔츠, 밑위가 긴 하이웨스트 바지로 미래 같지 않은 미래의 패션을 완성하였다.


포스터에서부터 주인공 테오도어의 시그니처인 붉은 웜톤의 셔츠는 이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호아킨 피닉스는 붉은색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채도가 높은 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웰링턴 스타일의 안경은 구글과 스마트렌즈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는 와비 파커의 모델이다.


또한 호아킨 피닉스가 착용한 역사다리꼴 모양의 각진 웰링턴 스타일의 안경은 그의 지적이나 다소 고지식한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주인공 이외의 등장인물들의 의상 역시 깔끔한 미니멀리즘의 전형으로 다채로운 색감과 믹스 앤 매치, 레이어드를 통한 전혀 '미래적이지 않은 미래'의 패션을 보여주고 있다.


테오도어는 사만다로 인해 진짜 사랑에 관한 실마리를 찾는다.(찾는 것 같다)


영화의 결말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테오도어는 사만다에게 진짜 사랑을 느낀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는 직업상 가짜 사랑, 가짜 우정, 가짜 연민이라 생각하는 대필 편지에서 진짜 사랑을 느끼고 있다. AI가 아닌 인간의 감정은 어느 순간이고 진위를 잘 못 판단할 수 있으며 모순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고 바로 인간다운 것이다.


이미 우리네 삶 속에는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알게 모르게 AI의 새로운 기술들이 하나씩 접목되고 있다.


대부분은 AI가 인간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생각, 아니 연산을 하며, 높은 확률로 인간보다 더 옳은 결정이나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그렇게 계산적이고 순차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수만 가지의 감정이 교차 반복되며, 의식과 무의식의 줄다리기 속에 생겨나는 욕망과 미련, 연민과 동정 혹은 동질감 같은 느낌이 쌓이고 쌓이면서 생겨나는 인간만의 축복받은 본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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