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2)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able Feast)>는 본디 기독교의 부활절처럼 '이동축일'은 뜻하는 말이지만, 헤밍웨이는 이 표현을 빌어 파리에서의 매일 축제 같았던 삶을 동명의 저서에 기술하고 있다.
전 편 <위대한 개츠비>에서 서술했듯이 재즈시대라 불렸던 1920년대 미국은 전후 엄청난 경제 성장으로 매일 놀고 마시는 흥청망청의 시기였다. 그러나 나날이 발전하는 자동화와 확일화된 산업 구조에 일자리수는 전쟁 전보다 줄어들었으며, 죽음을 불사하고 나라를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던 청년들은 목숨을 부지해 돌아온 고향에서 할 일이 없었다.
문화 예술 역시 물질주의의 팽배로 인해 껍데기의 가치만 높아졌을 뿐 그 내실을 점점 곪아 들고 있었다. 이렇게 순수성을 잃어버린 문화예술 현상에 빗대어 그 시기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라 표현하곤 한다.
'잃어버린 세대'에 환멸을 느낀 몇몇 예술가들은 미국을 떠나 예술의 수도라 일컫어지는 프랑스 파리로 모이게 되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미국과는 다른, 매일이 축제였던 그들만의 파리를 회상한다.
할리우드의 중견 시나리오 작가인 길 펜더(오언윌슨 분)는 약혼녀 이네스(레이철맥아담스 분)와 미래의 장인의 사업차 파리에 왔다가 파리의 예술적인 정취에 이끌려 홀로 밤거리를 서성인다. 길모퉁이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와중 자정을 알리는 성당 종소리와 함께 구형 푸조 차량 한 대가 길의 앞에 도착하고 차에선 몇몇의 선남선녀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자신들과 함께 파티에 가자고 한다.
얼떨결에 끌러간 파티장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를 초대(?)한 커플은 스콧 피츠제랄드(톰히들스턴 분)였고 그의 아내 젤다 피츠제랄드였다! 쟝 콕토가 주최한 파티장 안엔 재즈의 거장 '콜 포터'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시간 여행을 통해 그가 갈망하던 예술가들의 파리인 1920년대의 파리로 온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피츠제랄드가 이끈 곳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게 되고 그는 헤밍웨이를 통해 거스루트 스타인에게 아내에게조차 밝히길 꺼려했던 자신의 소설을 보여준다.
자정을 기해 과거로의 여행에 맛 들인 그는 피카소를 조우하고 그의 연인이었던 아드리아나(마리옹꼬띠아르 분)를 만나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아드라이나와의 데이트 도중 아드리아나가 꿈꾸던 벨에포크의 시대 1890년대의 파리로 다시 한번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그들은 로트렉, 드가 , 고갱 등 당대의 거장들과 만나고 결국 아드리아나는 그 시대에 빠지고 만다.
현재로 돌아온 길은 껍데기뿐인 사랑이었던 아내와의 이별을 선언하고 우연히 길에서 빈티지 잡화점 직원인 가브리엘(레아세이두 분)을 만나고 영화는 빗속의 파리를 거니는 둘의 뒷모습으로 마무리한다.
1969년, <돈을 갖고 튀어라(Take The Money and Run)>로 데뷔한 우디 앨런 감독의 41번째 장편 상업 영화인 <미드나잇 인 파리>는 예술의 도시 파리의 고전적인 정취와 미학적인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시드니 베쳇의 낭만적인 음률과 함께 장장 5분간 유명한 파리의 랜드마크부터 뒷골목의 소소한 전경들까지 비추는 오프닝씬부터 감독의 파리예찬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유명 배우들이 분한 더 유명한 예술가들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요 배경 무대가 되는 1920년대의 파리는 미국에서 넘어온 형태에 파리만의 특유의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함이 묻어 나는 패션을 보여준다. 같은 쓰리피쓰의 슈트에서도 다소 채도가 높은 색으로 더욱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파스텔톤의 셔츠나 타이를 이용해 발랄함을 강조하는 등 강직하고 무거워 보이는 미국의 그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여성들의 패션 역시 플래퍼룩이 유행하였지만 파리의 개성을 한껏 보여준 것은 단연 영화 속 가상인물로 샤넬 밑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설정으로 나오는 '아드리아나'의 아르데코 스타일이었다. 세일러 칼라 디테일과 레드컬러 트리밍 등 장식이 많고 몸매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H라인의 드레스와 시어한 소재의 새하얀 로우웨이스트 드레스 역시 역시 미국의 그것과는 달랐다.
주인공인 길 펜더는 작가로서 영감을 얻고 예술혼을 불태우기 위해 고뇌하는 작가이다. 우연히 오게 된 파리의 예술적인 감성에 이끌러 1920년 예술계의 황금기인 파리를 꿈꾼다. 정작 꿈꾸던 곳에서 만난 여인은 또 지나간 세월인 아름다운 시절, 벨에포크 시대의 파리를 꿈꾼다. 프로이센 전쟁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를 의미하는 벨에포크는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경제나 과학의 발전도 눈부셨던 시기이다. 겪어오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갈망이자 환상이다.
즉 예술가는 환상을 갈망하는 직업이다. 뒤를 돌아보는 일은 고독한 일이다.
오늘도 고독한 현재의 예술가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