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을 입다.

#18 태양은 없다(City of Rising Sun, 1999)

by john C

시대나 국가를 막론하고 패션을 주도했던 건 항상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청춘들의 역할이었다. '젊음'이라는 무기 하나로 기성세대에 맞서고 전통적인 관습에 전복을 꿈꾸는 일은 패션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항상 자연발생적인 흐름은 아니었다. 억눌린 자아, 경제적인 결핍, 부조리 가득한 사회질서들이 그들의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패션'이라는 이름의 서브컬처로 귀결되었다. 물론 항상 '양아치'나 '쓰레기' 같은 험한 단어가 앞에 붙곤 했었다.


<태양은 없다>는 당대 최고의 비주얼 신예 배우 두 명의 영화답게 10여 종이 넘는 포스터가 만들어졌었다.


영화 <태양은 없디>는 갑자기 불어닥친 IMF 경제 위기 속에 희망 없는 청춘들의 방황과 불안, 그리고 위태로움을 세기말적인 감성을 듬뿍 담아 그려냈다.


정우성은 영화 <비트, 1997>로, 이정재는 영화 <젊은 남자, 1994>로 데뷔하며 단 숨에 아이돌스타로 급부상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이나 만듦새를 떠나 한국영화계의 떠오르는 두 개의 태양과도 같았던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걸출한 신예의 캐스팅만으로도 화제가 된 영화이다.


권투선수인 도철(정우성 분)은 펀치드렁크를 겪고 있다. 패배의 쓰라림을 잊기 위해 관장이 소개한 흥신소에서 일하게 되고 여기서 만난 동갑내기 홍기(이정재 분)와 합숙하게 되면서 친해진다. 홍기는 압구정동에 있는 30억짜리 건물을 갖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사기나 절도의 범법행위를 일삼는 것에 지친 도철은 홍기와 절교를 선언한다. 홍기가 매니징을 하고 있던 내레이터모델 미미(한고은)와 사귀게 된 도철은 그녀가 잘 나가게 되자 이유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가까스로 다시 복싱시합에 나가게 된 도철은 또 한 번 패배를 겪게 되고 홍기는 사채업자 병국(이범수 분)과 담판을 지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던 미미는 무슨 이유인지 촬영 전 다른 배우로 교체된다. 떠난 미미의 집 앞에 남겨진 두 남자는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근육질의 몸배를 그대로 부각하는 반팔 쫄티와 화려한 꽃무늬의 의상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태양은 없다>는 전작 <비트( Beat, 1997)> 의 흥행을 이어받을 김성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서울관객수 33만 명 정도의 준수한 성적을 낸 영화이다. 상기하였듯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정우성'과 '이정재'의 출연만으로도 대박이 기대되는 작품이었으나, 뒤이어 개봉한 <쉬리>에 밀려 아쉽게 큰 흥행은 하지 못하고 바로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였다.


지금 보기엔 다소 난해한 이른바 태양족 패션을 잘 소화해 냈다.


특히 영화 속 도철과 홍기가 입었던 의상들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힙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으며 몇몇 브랜드에서는 앞다투어 비슷한 무드의 옷을 출시하곤 하였다.


오버스런 음영효과로 더욱 반항적이며 남성적이 이미지를 그려냈다.


두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패션들은 50년대 '태양족'이라 불렸던 일본은 전후시대 청춘들의 패션으로 큰 꽃무늬의 화려한 알로하셔츠(또는 하와이안 셔츠)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등 반항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궤를 같이 한다.


1956년 개봉한 영화 <태양의 계절>의 포스터, 포스터는 칼라지만 영화는 흑백영화였다.


'태양족'이라는 말 또한 1956년 일본에서 개봉한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라는 영화에서 유래된 말로, 이 영화 역시 전후시대 도덕적 해이와 희망 없이 방황하는 우울한 청춘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의 작가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23세 젊은 나이로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태양의 계절>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바로 원작자 이시하라 신타로의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였으며, 그는 데뷔작인 이 영화를 통해서 국민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일본 영화 <태양의 계절>의 주인공 역이었던 이시하라 유지로, 이 영화로 데뷔하여 국민배우로 발돋움하였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주인공인 이시하라 유지로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말투나 행동까지 큰 유행을 하였다. 이들을 언론에서는 <태양의 계절>에서 파생한 하위문화로 취급하였고, 그 문화를 추종하는 이들을 '태양족'이라 명명하였다. '태양족' 중에서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반항적이고 불건전한 이들이 많아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으며 이를 근절하는 캠페인이나 단속 역시 시행되었다.


이 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는 <태양의 계절>과 완전히 분리해서 보긴 어려우며, 작중의 분위기나 전개 또한 비슷한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다른 점은 전후시대와 경제위기시대라는 시대적인 상황일 뿐 주인공 역시 권투선수인 것도 동일하다.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양은 없다>는 당시의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눈에 보이지 않은 병폐와 그 시대적인 풍파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견디어 내야 했던 이들에 대한 적나라헤게 묘사한 작품이다. 뛰어난 수작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시대정신이 살아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심심하면 나오는 슬로우 장면들과 흔들림을 예술로 승화한 헨드헬드 촬영, 물 빠진 현상 기법인 블리치바이패스의 사용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1995>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객관적으로 봐도 떨어지는 몇몇 배우들의 수준이하의 연기와, 당시 큰 인기를 얻었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의 핸드헬드 촬영이나,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의 무작위 한 사용은 영화적인 완성도를 저해시키는 요인이지 않았나 싶다.

새 천년이 도래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지 벌써 4 반세기가 지났다. 홍기가 맹목적으로 갖고 싶어 했던 압구정의 30억짜리 건물은 그새 150억이 훌쩍 넘었다. 도철이가 겪는 펀치드렁크 역시 단순한 약물 투여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는 시대이다. 집안일부터 학교, 회사, 공장 등 모든 시설이 자동화되어 훨씬 더 편리하고 신속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알아낼 수 있으며,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출생률은 세계 최저,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좌우를 나누고 상하를 가르며, 성별을 떼어 놓고 다툰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지는 관심도 없다. 그저 정답만을 찾기 위해 온 나라 전 국민이 유튜브나 인스타를 뒤진다.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좇는다.


그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은 여전히 묻어두고 있다. 차면 기우는 법이다.


<태양은 없다> 개봉 이후 14년 만에 잠수교에 다시 만난 여전한 비주얼의 '청담부부' 이정재와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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