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2023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25년 마지막 날이다. 여러분은 2026년 새해 첫날 이 글을 보고 있을 것이다.
Happy New Year!
모쪼록 2026년 한 해도 건강하시길 바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2025년 대한민국 패션계를 넘어 범사회적인 현상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영포티(Young Forty)'. 글자 그대로 '젊게 사는 40대'를 뜻하는 말로, 과거의 권위적이고 전형적인 40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현재의 40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근래 들어 다소 멸칭처럼 쓰이는 경향이 왕왕 있지만 사실 국내외적으로 다사다난했던 2025년 대한민국의 얼어붙은 패션 시장의 경기를 그나마 우상향으로 이끌었던 장본인들이다.
패션업계로서는 멸칭이든 아니든 '영포티'라는 '세대를 규정'해준 데에 한없이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40대를 공격하는 말이나, 멸칭으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현재의 '영포티'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들은 이미 'X세대'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회적인 추앙과 멸시, 시기와 질투를 경험한 1970년 대생들이다. 영포티'를 조롱에 대상으로 삼으며, 'MG'라 불리는 현재의 이삼십대가 즐겨 입는 와이드팬츠나 로우프로파일의 스니커즈가 한 때 'X세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입었던 패션이었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얼핏 40대를 총칭하는 것 같지만 '영포티'는 주로 40대 남성을 겨냥한다. 이 같은 이유는 극명하다. 그동안의 '40대 남성'은 대한민국의 어느 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2025년의 '영포티' 열풍(?)은 소비력이 없던 그들이 새로운 '큰 손'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어느새 40대가 되어버린 '전 X세대, 현 영포티'들이 시장에서 물러나지 않기에, 시장에 이제 막 들어오려는 이들에겐 영 공존하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2025년의 두 번째 패션 키워드를 꼽자면 이제는 너무나 큰 메가 트렌드가 되어버린 러닝(Running)이다.
이 역시 '영포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또 '에어 조던'으로 대표되는 트렌드였던 '스니커즈'이다. 이전 몇 년 동안 나이키의 에어 조던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져 출시 즉시 품절이 되고 각종 중고거래 사이트나 온라인 플랫폼에 몇 배의 프리미엄이 붙은 리셀가가 형성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스니커즈로 하는 재테크 열풍까지 불었을 정도였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휩쓴 러닝 열풍으로 인해 '영포티'가 열광했다던 스니커즈의 시장은 이제 예정 같지 않다. 영포티가 묻었다고 하는 '온러닝(On Running), 호카오네오네(Hokaoneone) 등의 러닝화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러닝에 대한 열풍은 2026년에도 계속 될 것이며 이제는 트렌드라기보다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하튼 특이한 것은 '영포티'를 멸칭으로 사용하는 이들은 '나이키' 역시 '영포티 브랜드'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둔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공격인가 싶다. 이러한 세대 구분으로 어린아이들 코 묻은 이윤을 남겨 먹는 장사치나, 제목 빼곤 보잘것없는 황색 언론들의 쓰잘 떼기 없는 상술이길 바란다. 더불어 이러한 세대의 분할은 산업적으로는 유의미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악용될 소지가 꽤 많다. 따분한 일상에 흥미를 유발할 거리는 되겠지만 서술하였듯이 조금만 알아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논리적 비약이 심한 구분이다. 그저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 낸 하나의 촌극으로 맹신하거나 추종할 이유가 없다.
'영포티'를 밈처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위의 '코리안 영포티 스타터팩'이라는 인포그래픽을 보고 있다가 발견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OTT로 다시 보면서 극장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일종의 희열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의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한 원작 만화 '슬램덩크'에서 주인공인 강백호가 아닌 조연이었던 송태섭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국내에서만 50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작 '슬램덩크' 역시 향후 X세대를 거쳐 영포티가 되는 1970년 대생들의 대다수가 가장 큰 팬이 된 만화이기에 그들에게는 지난 온 것들이 불려 일으키는 향수와 송태섭이라는 조연을 중심으로 새로 써 내려가는 스토리가 당연히 반가웠을 것이다.
고향 오키나와에서 아버지와 형을 사고로 잃고 북산고에 진한학 송태섭은 농구선수로서는 크지 않은 키를 잦고 잇지만 누구보다 높은 투자와 스피드로 당당하게 주전으로 경기를 임하고 있다. 상대는 고교 농구에서 일본 최고라 불리는 산왕공고. 탈고교급 실력을 가진 산왕고교에 막강함에 북산은 20점 차 이상으로 벌어지고 만다. 강백호의 헌신적인 플레이를 중심으로 각성한 북산은 산왕과의 경기에서 기적을 만들고자 한다.
원작의 연재가 끝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의 신드롬 정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탄탄한 기존의 팬인 '영포티' 덕택일 테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주목할 만한 패션 아이템은 누가 뭐래도 농구화이다. 그때도 유명했던 나이키와 아식스 농구화들 사이에 유난히 낯선 주인공인 송태섭의 농구화, 컨버스 엑셀레이터가 보인다.
주로 락커나 스케이트보더, 히피들의 전유물처럼 반항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던 컨버스는 실제로 농구화의 시초라 할 수 있다. 1907년 마르키스 밀스 컨버스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이 브랜드는 초기에는 방한용 부츠를 만드는 회사였지만, 특유의 격자구조의 밑창을 개발하여 세계최초 기능성 농구화를 만들어낸 회사이다. 이후 농구선수 출신 '척테일러'를 고용하여 본격적으로 농구화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당시 많은 프로농구 선수들이 신으면서 자연스레 저변이 확대되었다.
전 후 시대 농구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반항적인 청소년들이 신는 신발로 전략한 컨버스는 기능성면에서도 후발주자였던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밀리며 스트릿패션 어디쯤의 서브컬처의 아이콘으로 남다가 2001년 결국 파산하고 만다. 2003년 나이키가 컨버스를 인수하면서 조금 더 기능성이 강화된 스니커즈를 내놓으면서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때 일본의 컨버스는 일본의 아웃도어 회사인 골드윈 산하에 속해 나이키에 흡수되지 않고 컨버스재팬이라는 이름으로 오리지널리티를 보존하고 있다.
극 중 송태섭이 신은 컨버스 엑셀레이터는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송태섭 캐릭터를 구축할 때 참고 했던 인물인 1990년대 피닉스 선즈의 가드였던 케빈잭슨이 실제로 착용했던 모델과 같은 농구화이다. 지금 보기엔 다소 벌키 한 외형에 블랙, 레드 화이트의 단순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가죽갑피가 꽤나 튼튼해 보인다.
현재도 컨버스재팬에서는 '컨버스 타임라인' 제품군을 만들어 엑셀레이터를 포함한 예전의 모델들을 현대적으로 복각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외에도 글로벌 컨버스와는 전혀 다른 전략으로 마니아층을 단단히 하고 있다.
원작 <슬램덩크>의 주인공이기도 한 강백호가 두 번째로 신은 모델은 그 유명한 나이키 '에어 조던 1 하이 브레드'로 북산고교의 색이 들어간 농구화를 채택하여 강백호의 상징성을 높였다. 같은 팀의 서태웅 역시 나이키의 '에어 조던 5 파이어레드'를 신었다. 정대만은 아식스의 '파브레 재팬'을, 주장 채치수가 신은 농구화는 송태섭이 신은 엑셀레이터와 같은 브랜드, 컨버스의 '프로 콘퀘스트'라는 모델이다.
재밌는 건 안감독이 신은 아디다스의 '프로 모델'이라는 농구화이다. 일반적으로는 '슈퍼스타'가 아디다스의 첫 번째 농구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전에 북산고의 감독 안한수가 신은 '프로 모델'이라는 농구화가 존재했었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업계의 디테일까지도 살려낸 작품이기에 이렇게나 많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026년 1월 14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