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넷플릭스 시리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대한민국은 퍼스널 컴퓨터가 서서히 필수가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집집마다 들어선 컴퓨터는 주로 아이들용이었으며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컴퓨터게임도 인기를 끌었다. 그중 유난히 내가 다닌 중학교의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게임은 코에이사에서 출시한 <삼국지 3>였다. 5.25 플로피 디스켓 4장으로 구성된 이 게임은 우리 학교뿐 아니라 당시 전국 중고등학생들이 열광했던 게임으로 기억된다.
삼국지 게임에 몰입된 나와 친구들은 자칭 '삼국지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각자 좋아하는 삼국지의 캐릭터를 골라 서로 그 캐릭터를 이름을 불러주며 당시 게임 속의 대사같은 사극톤의 대화를 즐기며 낄낄거렸던 기억이 있다. 암묵적인 룰은 이른바 네임드 캐릭터, 그러니까 유비, 장비, 관우, 조조 등은 선택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컴퓨터게임 내 설정에서 따온 룰이었다. 일찌감치 캐릭터를 선점할 기회가 있었던 나는 누구나 선망하는 조운(조자룡)을 택했다. 우리끼리는 당시에도 재밌었고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추억 중 하나지만 다들 그 외의 친구는 없었으며, 특히 여자애들에겐 존재감조차 없는 애들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시작 역시 '던전 앤 드래곤(Dungeons & Dragons)'이라는 세계 최초의 TRPG(Talbetop Roll Playing Game)에 빠진 네 명을 소년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이크(핀 울프하드 분), 더스틴(게이튼 매터래조 분), 루카스(케일럽 매클로플린 분) 그리고 윌(노아 슈냅 분)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파티(party)를 중심으로 장장 10년간 다섯 개의 시즌에 걸쳐 진행되는 <기묘한 이야기>는 얼마 전 마지막 시즌을 공개해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미 시즌5가 나오기 전부터 누적시청 10억 시간을 넘기며 <오징어게임> 이후로 최대의 흥행작이 된 넷플릭스의 시리즈로, 80년대 미국의 인디애나주 로앤카운티의 홉킨스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상하고 기묘한 현상과 그 현상에 맞서 가족과 친구, 마을과 국가, 어쩌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이들이 이야기이다. 던전앤드래곤이라는 희대의 TRPG 게임을 등장시키면서 자연스레 각각의 캐릭터에 그에 맞는 성격을 부여시켰다. 예를 들어 리더 격인 마이크는 팔라딘, 머리를 주로 쓰는 더스틴은 바드, 주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역할인 루카스는 레인저, 그리고 원치 않게 기묘한 능력을 발휘하는 윌은 소서러 역할을 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인 1980년대 중반이 배경이기에 배우들의 의상뿐 아니라 집, 자동차 등 각종 자잘한 소품들 까지도 그 시대의 실제 있었던 것으로만 복원하여 사용되었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때의 미국 패션을 찾아보는 건 어렵진 않지만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듯한 아이들이기에 더욱 그 시대상이나 분위기를 나타내기 충분하였다.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디테일, 어깨에 과한 패드가 들어가 있는 등의 '파워드레싱'이 유행했던 시절이었으나 던전앤드래곤이라는 게임이 빠져 있는 소위 '너드'라 할 수 있는 이들의 패션은 어디가 모르게 어설프고 맥 빠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네 명의 주인공 중 '탱커' 역할을 맡고 있는 '마이크 윌러'는 그때의 아이들은 꼭 거쳐가야 하는 바가지머리 스타일에 후줄근해 보이지만 항상 관리가 잘 되었거나 깔끔한 스타일의 튀지 않는 패션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의 중산층 아이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이 사다 주신 대로 입은 모양새이다. 특히 중간쯤 나오는 폴로의 럭비셔츠는 대표적인 모범생 이미지의 아이템으로 학생인 자녀를 둔 부모님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아이들 위상이었다. 게다가 두껍고 튼튼한 코튼저지로 된 옷이라 쉽게 헤지지도 않고 구김도 없어 언제나 단정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 한창때의 남자아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의 복장이다. 어딘가 모르게 '팔라딘'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는 외 모이자만 이 점이 <기묘한 이야기>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마이크가 부모님에게 '관리'된 아이의 패션이라면 정반대에 서 있는 건 팀 내 가장 현실적인 괴짜 역할이자, 가장 사랑스러웠던 캐릭터인 '더스틴 헨더슨'은 시즌 내내 트러커캡을 그의 시그니처로 한 내추럴한 동네 꼬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장하는 어린이의 모습답게 기장이 바짝 짧아진 바지도 아무렇지 않게 입으며, 판촉용으로 받았을법한 트러커캡과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헐렁한 티셔츠 등이 부모나 삼촌, 혹은 동네 형들에게 물러 입었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도무지 남의 신경을 1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패션으로 시즌이 거듭할수록 더욱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성한다. 더스틴 역시 지략가인 '바드'와는 상반된 내추럴한 그대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네 명의 주인공 중 유일한 유색인종으로 레인저형 딜러 역할을 맡은 루카스 싱클레어는 밀리터리나 워크웨어로 가장 정의롭고 지고지순한 캐릭터의 착장을 보여준다. 특히 팀 내 딜러 역할로 액션이 많았던 루카스의 옷은 활동성이 강조된 의상이 주로 쓰였다. 컬러도 우직한 느낌의 차분한 무채색계열의 컬러가 많이 사용되었다. 레인저형 딜러 역할이던 루카스 역시 아이러니하게 겁이 많은 캐리거로 설정되어 있다.
<기묘한 이야기>의 스토리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인 '윌 바이어스'는 게임 던전앤드래곤의 워락과 같은 캐릭터로 '감지자' 혹은 '예언자' 역할을 한다. 극 중 가장 고통받는 존재로 나오는 윌의 의상은 항상 톤다운된 착장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그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체크나 스트라이프 등의 패턴으로 혼란스러움과 미성숙함을 내포한 듯하기도 하다. 극 중 마이크는 윌을 보고 '소서러'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공포의 대상과 계약한 마법사'의 콘셉트인 '워락'과 가깝다. 시즌 막바지에 자신의 의지로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은 '소서러'라고 봐도 무방하긴 하지만 전체 시즌을 두고 보았을 때는 워락의 이미지와 가장 근접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지하방에서 몇 시간 동안 던전앤드래곤을 하는 네 명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산속에서 미지의 소녀 '일레븐(바비 밀리 브라운 분)'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극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인 일레븐이 어찌 보면 게임 속 '소서러'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 가정했을 때 일레븐은 소서러이자 잃으면 바로 게임이 끝나는 존재이다. 일레븐이야말로 <기묘한 이야기>가 설계한 가장 아이러니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일순 먼치킨 같은 능력을 보이면서도 한없이 약하고 여린 존재이다. 때문에 모든 등장인물들은 일레븐을 보호하려고 하고 반대로 일레븐은 모든 인물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연구소를 탈출해 마이크 일당과 우연히 마주친 일레븐은 시즌이 거듭할수록 능력은 강해짐과 동시에 서서히 밝혀지는 그의 과거와 존재의 이유로 인해 힘들어진다.
일레븐의 패션은 극의 서사와 함께 변화한다. 초반 환자복 차림으로 연구소에서 탈출한 일레븐은 남의 옷으로 갈아입음으로 이질적이고 어정쩡한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시즌3에 들어서 마을에 생긴 쇼핑몰에서 생애 처음 자신이 직접 고른 화려한 원색의 원피스를 입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듯한 이미지를 보이며, 이후 극이 전개될수록 트레이닝복 등 활동성이 강조된 착장으로 점차 전사의 이미지로 변화한다. 가장 많은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극 중의 분위기와 서사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였다.
이 외 단순한 조연을 치부하기는 어려운 윌의 엄마 조이스 바이어스(위노나 라이더 분)와 홉킨스 마을의 보안관 짐 하퍼(데이비드 하버 분), 마이크의 누나인 낸시 윌러(나탈리아 다이어 분), 윌의 형 조나단 바이어스(찰리 히턴 분) 그리고 낸시의 전 남자 친구이자 더스틴의 절친(?) 스티브 헤링턴(조 키어리 분), 스티브의 여사친 로빈 버클리(마야 호크 분) 등 굵직한 캐릭터들이 여럿 나온다. 이 들 역시 각자 맡은 역할에 알맞은 그 시대의 착장으로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조연 중 가장 눈에 띄는 역은 당연 극 후반으로 갈수록 그 존재감이 강해졌던 맥스 메이필드(세이디 싱크 분)이다. 전학생으로 등장해 루카스의 여자 친구가 되며, 일레븐과의 우정과 일탈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했으며, 갈등 해결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 맥스는 엉뚱하지만 발랄한 의상으로 보이시한 매력까지 겸비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 투성인 얼굴로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외모를 가진 맥스는 찍어진 청바지나 잔무늬의 니트 등의 목가적인 의상으로 한층 더 귀여우면서 밝은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특히 다른 캐릭터와는 달리 루즈한 핏을 즐겨 입는 맥스는 그 당시 유행했던 스케이트보더 스타일을 완벽히 재현하였다. 탱커이지만 피지컬이 약한 마이크와 함께 파티에서 탱커 역할을 수행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며, 극의 마무리에 큰 역할을 한다.
<기묘한 이야기>는 80년대의 패션과 시대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그 당시의 가족 간의 우애와 친구 간의 우정, 국가 간의 분쟁과 세대 간의 마찰 등을 총망라한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가 아닌가 싶다.
줄거리의 면면만 보더라도 당장 그의 영화 <E.T>나 <미지와의 조우> 등이 단박에 떠오르며, 그가 제작한 <구니스> 역시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스탠바이미>, <백투더퓨처>, <터미네이터> 등 그 시절 엄청난 흥행을 이룬 영화들이 수없이 오마주 되었으며, <스타워즈>나 <고스터바스터즈> 등은 시리즈 속에 그대로 노출되는 등 80년대 영화에 대한 향수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또한 배경이 되는 곡들도 그 당시의 분위기에 취하기 딱 좋은 곡들로 선정되어 있다.
완결이 된 시리즈를 고집하시는 분이나, 나처럼 80년대의 감성에 흠뻑 빠지고 싶은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