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팔공년생 오빠가 마흔 살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

by 별무리



2019년 올해로 딱, 1980년 출생자 즉 팔공년생이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되었다. 아직도 팔공년생 하면 마치 DNA에 박힌 듯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마치 지구 상에 팔공년생은 이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떠오르는 그.


이재원 오빠.


이름 옆에 '오빠'가 자동 완성되는 그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그 아이돌 그룹이라 하면, 내 또래의 여자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가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했을 때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 한채"가 DNA에 박힌 듯 자동 재생될 수밖에 없게 만든, 1996년 9월 7일 데뷔한 전설의 아이돌 그룹 H.O.T. 다.

(이 글을 쓰며 그 흔한 네이버 검색 한 번 안 하고 데뷔 일자가 바로 떠오르는 것에 다시 한번 소름)


수학여행 장기자랑 때 나는 왜인지(이유가 기억이 안남) 이재원 오빠 역을 맡아 오렌지색 옷을 입고 캔디춤을 췄었다.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눈물 나게(실제로 방송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울었던 1인 - 이 경험은 나중에 꼭 글로 써보고 싶다.) 재결합하여 완전체로 컴백, 단독 콘서트를 열었던 오빠들. 올해 9월 또다시 단독 콘서트를 예고한 이 오빠들 중 가장 막내인 이재원 오빠가 바로 팔공년생, 올해 마흔 살이 되었다.




아직도 팔공년생 하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 하나. H.O.T.가 출연하면 녹음해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라디오 방송 중 '김현철의 디스크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개그맨 김현철 아닙니다. 가수 김현철이에요.)


파릇파릇 신인 시절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5명 멤버들의 프로필을 보던 DJ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막내 이재원 군이 팔공년생이네요?


순간 정적, DJ의 놀란 표정이 보이는 라디오처럼 보이는 듯했다.


햐아.. 80년대에도 사람이 태어났네요?



지금 들으면 이 무슨 소린가 할 반응이지만, 그 당시 라디오 부스에선 웃음이 터졌다. 아이돌 가수가 전무하던 시절 69년생인 DJ에게 80년생은 정말 미지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겨우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같이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날 만하다.


사람이 태어났는지 조차 갸우뚱했던 그 시절의 팔공년생들이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 나에게는 이것이 2019년 올해, 2000년생이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마흔 살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한 것은 그런 강렬한 자각 때문이었다.





마흔 살을 준비하는 글은 서른아홉 살쯤 써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아직 마흔 살까지 충분한(충분할 것이라 믿는) 시간이 남은 삼십 대 중반의 지금부터 천천히 써보려고 한다. 그 때 그 시절 이재원 오빠가 갑자기 마흔 살이 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처럼 갑작스럽게 나의 마흔 살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서른 살을 맞이하던 스물아홉 살에는 훨씬 더 엄청난 일처럼 시끌벅적했는데, 막상 닥쳐서는 어? 서른이야? 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서른이 되던 순간의 감정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때의 내가 조금 궁금하긴 하다. 글로 써두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래서 일기를 쓰는 걸까?



나이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마흔 살을 준비하는 글을 쓰고 싶다. 이제 정말로 백세시대라면 마흔 살은 겨우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숨을 헐떡이는 어딘가 일 텐데.


어? 마흔이야?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가다듬고 대열을 정비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전반전 종료 휘슬을 기다리고 싶다.


삼십 대 중반에 마흔을 준비하며 이 곳에 쓴 글을 꺼내어 읽으며, 즐겁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마흔 살을 맞이하고 싶다. 그 글들로 누군가의 마흔에도 그런 여유를 선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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