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전세 계약 만료일이 3개월 남은 세입자다. (나를 이렇게 정의하고 보니 벌써부터 조금 슬퍼지지만) 3개월 전, 그러니까 전세 계약 만료일이 6개월 남았을 무렵 집주인이 바뀌었다. 그때 계약을 담당했던 부동산에서 "바뀐 집주인분이 아무래도 들어와서 살려고 매매하신 거 같은데 나중에 한 번 여쭤보세요."라고 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럼 제가 나가야 하는 건가요?
집주인이 들어와서 살겠다는데 세입자가 이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인가!! 싶겠지만,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최초로 독립생활을 시작한 정든 내 집, 아니 정든 내 전셋집을 딱 2년 채우고 떠나야 하다니, 서러워서였다.
이제야 독립 선배들이 왜 2년 단위로 전셋집을 전전하다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고 빚더미로 걸어 들어가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서럽고 더럽고 치사해서였다.
부동산에서는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한번 여쭤보라고 했지만 그 여쭤보는 전화를 하는 것이 두려워 3개월을 미뤘다. 그러고 이제 더 물러날 곳 없는 딱 마지노선 전세 계약 종료일 3개월을 앞둔 지난주, 드디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가 심술궂은 목소리였다면 좀 더 드라마틱했을 텐데. 서럽고 더럽고 치사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집주인은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좋은 분 같았다.
친절하게 이번 주 내로 확정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고, 약속한 기한 내 다시 전화를 하여 내가 이 집을 나가야 함을 알려주셨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알아보고 날짜 조정도 다 가능하니 이사 갈 집을 구하면 편하게 연락하라고.
이만하면 나이스한 이별이었다.
나이스한 이별 뒤 이튿날쯤 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아~ 강아지 키우고 싶다"라는 (요즘 하루에 한 번 씩 하는) 나의 말에 동생이 "키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지"라고 했다. 혼자 사는데 키우려니 강아지가 너무 불행할 거 같다고 하자, 그럼 유기견을 입양해서 키우라고 했다. 그래도 훨씬 더 불행한 상황에서 구조하여 밥도 주고 사랑도 주고 보금자리도 마련해 주는 거라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
어? 보금자리 나도 없는데?
갑자기 (아직) 아무도 내쫓지 않았는데 유기견이 된 기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금자리'의 국어사전적 의미
- 새가 알을 낳거나 깃들이는 곳
- 지내기에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일은 꼭 부동산에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