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Mar 22. 2020

1박 2일 ‘킹덤’ 정주행을 끝내고

코로나19 기록하기 -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만드는 이야기의 힘



지난 해 '킹덤' 시즌 1이 공개되었을 때, 마침 본가에 내려가 있었다. 혼자선 절대로 못 볼 것 같아 본가에서 가족들과 시즌 1 을 달리다가, 인육을 먹는 장면이 너무 리얼하게 나와서 그제야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걸 실감한 기억이 있다. 지상파나 OCN 드라마였어도 TV 시리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


잔인한 영화 절대 못 보는 쫄보라 배두나가 인육으로 만든 국을 내던지는 장면에서 소리를 지르며 TV를 끈 후로 킹덤은 시즌 2가 나올 때까지 다시 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시즌 2 공개를 앞두고 (볼 생각도 없으면서)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긴 했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 언젠가 보겠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


시즌 2가 공개된 지난 3월 13일, 내 주위 지인 2명이나 킹덤 2를 보겠다며 연차를 냈다. 회사에서도 불금이지만 칼퇴하고 집에 가서 킹덤 2를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며, 화제의 중심이 잠시 코로나에서 킹덤 2로 옮겨 갔다.


도무지 혼자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을 앞둔 금요일 친구가 집에 놀러 와 맥주 한 잔을 하다 킹덤 1을 시작했다.


이 시작에는 약간의 지금 생각하면 운명 같은 계기가 있다. 우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우리가 불금에 집에서 만난 것은 일단 이런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 그리고 원래 며칠 전 집에 있던 TV가 켜지지 않아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 시국에 A/S 신청까지 했건만. A/S 기사분께서 TV 본체를 열어 보시더니 메인 보드 고장이라며 그냥 하나 사시라고(물건을 오래 쓰는 나에겐 단골 멘트) 했었다.


그런데 전원이 영 들어오지 않던 TV가 갑자기 켜진 것이다.


이 정도면 킹덤을 시작하라는 하늘의 계시


그렇게 우리는 금요일 밤 12시를 넘긴 시각,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 대략 6시간을 제외하고 1분도 쉬지 않고 그야말로 '정주행'을 했다. 시즌 1을 끝내고 잠을 청하면서도 꿈에 좀비가 나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빨리 아침(새벽 6시 다 된 시각이었으나)이 와서 시즌 2를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정확히 6시간을 자고 일어나 낮 12시부터 시작한 킹덤 시즌 2 정주행은 저녁 먹을 시간 즈음 끝이 났다. 전지현의 변함없이 매력 넘치는 얼굴로 끝이 난 시즌 2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시즌 3 제작에 투자하는 펀딩 같은 게 있다면 당장 삼성전자 주식 사려던 돈을 넣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시즌 1을 보고 1년을 기다린 사람들이 연차를 내고 난리였는지 이해가 갔다. 폭풍 검색을 했더니 시즌 3은 아직 크랭크인도 하지 않았다. 김은희 작가님 어서 제발 대본을 써주세요. 제작진, 배우 여러분 어서 촬영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하아 당분간 무엇을 보아도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킹덤의 드라마적 재미에 대해 논해봐야 무엇하겠냐마는, 킹덤을 보며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는 남겨보고 싶다.



조선시대 좀비 영화에서 느낀 '민주주의'의 소중함


우선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내가 불금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친구와 킹덤 정주행을 하게 된 것과 같은, 이 드라마의 '시의적절함'이다.


이 시의적절함이라는 것이 작가나 마케터의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 아니라 정말 우연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전염병 시국 때문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이런 시국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이지만, 익숙하고도 낯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드라마가 지금의 상황과 드라마틱하게 겹쳐질 때마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 리더의 역할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다.



킹덤 속 '대중'인 백성들의 모습이 그저 유언비어에 흔들리고 불안에 떠는 모습과 같이 유약하게만 그려진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처럼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 궁궐에서도 봉화를 통해서야 알 수 있는 국가 재난 상황이니 막연한 두려움이 얼마나 클지는 이해가 갔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국가에 그저 굶어 죽지 않을 음식을 원하고, 역병을 피해 피난을 갈 수밖에 없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느꼈다. 이 역시 지금의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킹덤을 보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이라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유약한 대중의 모습이 아쉬웠지만, 그래서 대중들 가운데 서비나 영신 같은 돋보이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인(善人)들이 죗값을 치르는 방식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시즌 1에서 떡밥처럼 뿌려졌던 인물들의 비밀이 시즌 2에서 드러나고, 그 인물들이 '죗값'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권선징악이 분명한 좀비물에서 죗값은 주로 복수와 같은 징벌적 방식이 익숙한데, 킹덤의 방식은 달랐기에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죗값을 '스스로' 치른다.


악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에 무뎌지다 전혀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본인의 악행을 합리화, 우상화하는 반면, 선인들은 죄책감에 고통받고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죗값을 치른다. 특히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준 허준호가 분한 '안현 대감'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재앙의 증거가 되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스포일러 때문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안현 대감과 함께 한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장면이 모두 그랬다. 왜 악인은 더 악해지고, 선인은 악행을 저질러도 죄의식으로 더 고통받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 ㅠㅠ



물론 진정 죗값을 치러야 할 조학주 대감은 좀비에 물려도 살아났지만 결국 가장 차갑게 죽임을 당하긴 했다. (이 부분도 스포일러 때문에 더 이야기할 수 없으나, 보신 분들... 아시죠?)




내가 평소 좋아했던 배우 주지훈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의 열연, 특히나 일취월장한 중전의 서늘하고 기괴한 연기, 일부로 기획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이 시국에 딱 들어맞는 시의성, 활동성 좋은 한국인들을 방안에 머물게 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것, 역병과 피와 권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영원히 재미없을 수 없는 소재의 매력, 그리고 K-좀비의 탄생이라는 글로벌에서도 먹히는 비주얼까지.


관전 포인트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 최고는 이야기의 힘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다. 1년을 기다렸는데 몇 시간을 더 못 참냐며 시즌 2 공개일에 연차를 내는 지인들이 이해가 안 갔었는데.


시즌 2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전지현의 얼굴을 보며, 시즌 3가 나오는 날 연차를 내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어서 빨리 그 날이 오길.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