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코로나19 기록하기 - 아픔도 사랑하게 해 준 이 곳

by 별무리



어제 저녁 코로나를 뚫고 오랜만에 토요일 저녁 외출을 감행했다. 태생이 집순이와 거리가 먼, 주말에 집에 붙어 있었던 적이 없던 내가 거의 두 달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다 보니 우울감이 폭발해서였다.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언니와 함께 쌓아 둔 이야기를 나눌 겸 어디든 사람이 없겠지 하며 평소 가고 싶었던 식당을 검색했다. 오랜만에 보니 식당은 합정에서 홍대 쪽으로 이전을 한 상태였다. 평소 예약을 하지 않으면 두 시간 대기가 기본이었던 곳인데 코로나 덕에 바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각자의 집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출발했다. 홍대 근처이긴 한데 도무지 지도만 봐서는 어딘지 감이 오지 않는 위치였다. 처음 와보는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며, 가는 길 '오르막 주의' 관련 블로그의 수많은 글들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곳에 갔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오르막을 다 오르려는 순간. 어? 하고 발길이 멈추었다.


아, 여기구나.


너무도 익숙한데 또 너무도 달라진 풍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신촌에서 동교동 초입으로 들어오는 길, 산울림 소극장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경의선 숲길이 조성된 후로 동네의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이 곳을 매주 드나들었던 6~7년 전만 해도 철길에 공원이 들어선다며 부동산 가격이 들썩였고, 신촌도 홍대도 모두 집값이 올라 밀려난 예술가들, 가난한 창작자들이나 소상공인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곳이다.


절반쯤은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새집 냄새가 나는 세련된 새 가게들이었다. 덕분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가,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된 것 같다가 했다. 그래도 여전한 것은 그 시절의 공기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인생 다 산 사람 같긴 하지만 나에게 이미 지난 '청춘'이 있다면 그때가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어서 매주 그곳을 드나들었다. 우리는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고, 연주를 하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셨다. 이렇게 표현하면 꽤나 낭만적이지만 그때는 낭만이라기보다는 그냥 그 상태의 '나'라는 존재가 좋았던 것 같다.


사회 초년생에서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직장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렇게 대학생이나 20대 때만 누릴 수 있는 어떤 감정에, 브레이크 없이 빠져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그래도 돼, 하는 보상심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체력은 또 어찌나 좋았는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한 시간 자고 출근해도 티가 안 났다. (지금이었으면 바로 오전 반차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작업실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술집에서, 단골 포장마차에서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다 해 뜨는 풍경을 함께 맞이하던 날들. 아마 그때 마신 술의 알코올을 다 모으면 손 소독제 천 개쯤은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코로나 시국에 어울리는 가정을 해본다.


그 시절은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황급히 헤어지며 함께 끝이 났다. 슬픔보다 허무했다. 그 후로 의식적으로 그곳은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혹여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가슴이 답답해져서 놀랐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경의선 숲길이 완성되었고, 부동산 가격은 정말로 많이 올랐는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떠나간 사람은 누구누구인지 소식조차 듣기 어려울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7년쯤 만에 네이버 지도를 보며 위치를 옮긴 식당을 찾다가 정말 우연히 이 곳에 다시 온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평소였으면 사람들로 넘쳤을 거리가 드라마 세트장처럼 한산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지가 않았다. 오르막길을 막 오르기 전 제일 많이 다녔던 익숙한 거리를 훔쳐보듯 살며시 쳐다보며, 한 번쯤 다시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문득 이 거리의 공기가 사랑스러워졌다.


그 시절 사랑했던 '나'가 등장하는 이 곳에서의 추억, 그 기억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사랑스럽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었다.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 시간들이 사랑스럽다. 조금 그립기도 하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이.




오늘 주원님의 책 '혼자에 익숙해지는 중입니다'를 읽고 있는데 이런 문장을 만났다.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 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


전인권 밴드의 노래 <내가 왜 서울을>의 가사였다. 가슴 한 켠이 찌르르하는 마음에 노래를 찾아보았다. 노래를 듣기 전 가사를 읽었다.



철길을 따라서 나 홀로 걸을 땐

나도 몰래 외로운 눈물이 흘렀죠


가을 낙엽 길가에 외로운 화가들

자유를 위하여 만들어진 길이죠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 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


잊을 수 없어요

잊을 수 없어요

잊을 수 없어요

그 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



나는 이 거리를,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 모든 아픔을 담아 준 이 곳을. 아픔도 사랑하게 해 준 이 곳을. 나를 사랑하게 해 준 이 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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