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친구가 필요하다

'나 혼자 산다' 손담비 편을 보며

by 별무리



지난 금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손담비 편에서 공효진, 려원, 그리고 수미라는 이름의 비 연예인 친구까지 네 사람이 등장했다. SNS에서, 방송에서 가끔 이들의 친분을 엿보았기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방송을 보면서 아, 내가 바라던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삶이라기보다는 바라던 일상이었다.


서울 사는 사람의 로망인 한남동의 좋은 집, 화려한 직업, 아름다운 외모 그런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다. 우정과 자유로움으로 충만한 일상이다. 여자들끼리의 우정은 퍼뜩 그림이 그려지거나 상상이 잘 안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혼과 비혼, 출산과 커리어처럼 유독 여성은 나이가 비슷해도 어떤 생애주기를 지나고 있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기 때문인 것 같다. (남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차이가 적다.)


그래서인지, 예능 프로그램 속 언니(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라 치고)들의 찐 우정을 보며 내가 바라던 일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게 되었다. 삼십 대 중반에서 이제 후반을 바라보는 시기,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그려본 구체적 일상은 이러하다.



1. 친한 친구가 가까이에 사는 것. 그러니까 동네 친구가 있는 삶


나이가 들수록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또 혼자인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다. 귀찮으면서도 혼자 있기는 싫고, 그렇다고 이십 대 때처럼 기동력 폭발해서 주말 내내 풀로 약속을 잡고 점심, 저녁 사람들을 만나는 삶은 이제 지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이 동네 친구다.


약속을 잡고, 장소를 정하고, 만날 준비를 하고 그런 일련의 시간을 생략할 수 있는 친구. 야근을 하고 오늘도 하루 종일 일만 했네, 라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퇴근길 만나 맥주 한 잔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친구. 너무 먹었는데? 하는 날, 밤 11시에도 좀 뛸까? 하고 만나 동네 산책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약속이 없는 주말 갑자기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 집이야? 하고 어디든 30분 내 출발할 수 있는 친구.


이런 로망뿐만이 아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 어딘가 A/S를 해야 할 때 낯선 사람과 집에 있는 것이 늘 불안한데, 그때마다 서로의 집에 와줄 수 있는 친구. 이건 정말 동네 친구만의 엄청난 메리트다. 이쯤 되면 손담비와 친구들이 왜 하나둘 한남동에 모여 가까이 사는지 이해가 간다. 심지어 친구 수미는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닌가!


2. 친구의 가족과 가까워진다는 것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래 만난 친구가 편한 것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애주기에서 일어난 일, 가정사 등을 편견 없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이렇잖아, 하는 배경 설명을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된다. 드물긴 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하며 친구의 가족을 만날 일이 생기고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시간이 쌓이다 보면 특유의 '편안함'이 생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마음을 편하게 한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공감이 갔던 장면이, 생활 동반자로 함께 사는 두 사람이 서로의 부모님에게 마치 '사위'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지점이었다. '어머니, 열무김치가 너무 맛있습니다!' 하는 말을 사심 없이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사위나 며느리와 다른 점은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없다. 대신 도리가 아닌 호의를 마음껏 베풀 수 있다. 도리를 다했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호의에 감사하면 그만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나 혼자 산다' 손담비 편에서 서로의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고, 갑자기 친구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수미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말을 돌아가며 할 수 있는 관계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핏줄이 섞인 것만 같은 찐 우정이랄까.


3.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일하는 친구


방송을 보면 네 사람이 직업적인 공통점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사가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십 대 때는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나와 관심사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무언가 미지의 세상을 만나는 것 같은 호기심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특히 하고 있는 일의 결이 나와 맞거나 비슷할 때, 무조건 동종업계가 아니어도 당장은 아닐지라도 일을 통한 지향점이나 일을 대하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이 좋다. 무엇보다 대화의 주제와 소재가 무궁무진하고 즐겁다. 사실 아무 말이나 해도 재밌는 쪽에 더 가깝다. 그만큼 삼십 대가 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의 팔 할 쯤을 이루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이런 친구 중에 어린 시절을 벗어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입사 동기나 일하며 만난 파트너 회사 사람 같은, 업무적인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거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직장인이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특혜가 아닐까.




앞서 언급했던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는 인상 깊은 내용이 너무 많지만,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정망’ 이라며 자신의 지향점을 이야기한 김하나 작가의 아래 글이 정말 좋았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추억’ 이라는 귀여운 말에 떠오르는 시트콤 같은 순간들이 많은 것에 감사하다. 그 어처구니없음이 많은 인생을 더 사랑해야겠다.



한 사람이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집 평수나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얼마나 힘이 있는지가 아니라
친구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누구는 또 얼마나 잘 얻어먹는지
얼마나 잠을 잘 자고 얼마나 노래를 잘하며

얼마나 약지 못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고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추억을 가졌는지
인생에서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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