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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May 29. 2020

열심히 살다가 코로나에 걸린다는 것

코로나19 기록하기 - 황정은 <백의 그림자>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황정은, <백의 그림자> 중에서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던 5월 말, 바로 어제 오후 4시. 정부에서는 사실상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발표를 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폭증한 상황 때문이었다. 신천지와 이태원을 지나 온 지금의 상황, 정말 끝이 없는게 아닐까 두렵다.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최근 드러난 확진자들이 처한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주중에는 택시 기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돌잔치에서 사진 촬영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3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 주 6일 물류센터를 돌며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했던 일용직 근로자의 이야기. 새벽에 녹즙 배달을 하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콜센터에서 일하는 50대 여성의 이야기.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동선이 나의 삶과 무관했다면 알 수 없었을 현실이었다.


그들은 왜 주 7일 쉼없이 일해야 했으며, 그들의 작업장은 왜 늘 좁고 환기가 되지 않았으며, 전염병 시국에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는지. 그것이 오로지 마스크를 턱 끝에 걸고 일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의 사정인 것인지.


코로나 시국에 일용직 근로자를 뽑고 또 뽑는 유일한 자리는 온라인 쇼핑몰의 물류센터나 배달 대행 서비스의 라이더였다. 열심히 살다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사회의 약한 고리 끝에서 감염된 것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일까. 애초부터의 잘못은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일까.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일터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건강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코로나 시국에도 불안한 일터로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 리가 없다, 고 믿는다. 그것이 오로지 개인의 사정일리도.


코로나 시국에서 여느 때보다 국가의 안전망 속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사회의 약한 연결고리 틈과 틈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염의 불평등 또한 절감하며 희망과 절망의 시대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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